재수사 결과 이례적 신속 발표…"발병 원인은 선천성 뇌동정맥 기형"
군 복무 중 뇌동정맥 기형으로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에 놓였다가 31개월 만에 깨어나 "선임병들에게 각목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구모 이등병 사건에 대해 육군이 "집단 구타는 없었고 후두부 상처는 욕창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육군 관계자는 17일 "지난 달 11일 언론에 보도된 구모 이병 사건과 관련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육군 중앙수사단장 등 22명으로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당 서울대병원,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등과 함께 11월11일부터 지난 8일까지 한달여 동안 재수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육군은 재수사를 하면서 발병자인 구모 이병과 소대원, 지휘계선상의 간부, 응급후송 의무병과 군의관, 춘천성심병원 의사, 헌병대 수사관계자 등 4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재수사는 ▲발병자 후두부 상흔 발생경위 ▲발병자 폭행 및 동선 여부 ▲헌병 부실수사 의혹 등에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
육군 관계자는 "국가인권위원회 예비조사결과와 국가보훈처 심의자료를 분석하고 軍병원과 춘천성심병원 의료기록 일체에 대해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을 해 분당 서울대병원에 자문을 의뢰했다"며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들은 본인 동의를 받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거짓말탐지 검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구 이병의 후두부 상흔에 대해 군 관계자는 "당시 발병자를 치료한 의무병 2명과 응급구조부사관, 국군춘천병원 군의관, 춘천성심병원 의사 3명 등이 '외상이 없었다'고 일관되게 확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성심병원 응급센터 경과기록지와 간호기록지, CT·MRI 영상 등 의료기록 일체와 발병자 측이 촬영했다는 후두부 상흔 사진을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외과·성형외과에 자문을 받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자문 결과 '발병은 선천성 질환인 뇌동정맥기형 출혈에 의해 발생했고 발병당시 외상에 대한 증거는 없다"며 "'상흔은 입원 후 발생한 욕창'이라는 자문결과를 회신 받았다"고 밝혔다.
또 "발병자 후두부 욕창은 2012년 3월5일 춘천성심병원 간호기록지와 욕창발생보고서에 김모 간호사가 처음 기록한 이후 같은 해 6월17일까지 욕창을 지속적으로 치료했다는 의료기록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육군 관계자는 "뇌동정맥기형은 전체 인구의 1%에서만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라며 "동맥과 정맥이 이어져 있어 출혈이 발생하면 뇌압이 올라가 두통이나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증상이 없으면 사전에 발견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무청 입영 신체검사에서 이를 발견하려면 신검자에게 조영제를 주사하고 MRI를 찍어야 하는데, 신체검사가 그 정도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달 14일 언론에 보도된 '3월9일 욕창 없음'이라고 기록된 간호기록지에 대해 당시 간호사 박모씨를 상대로 확인한 결과 '기존 욕창부위 이외 새로운 욕창 부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기록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구 이병이 자신을 집단 폭행했다고 언급한 3명에 대해서는 "발병자가 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3명에 대해 동선과 집단폭행 여부를 확인한 결과 '폭행을 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이들에 대해 국과수에서 거짓말탐지 검사를 한 결과 '진실'(폭행 없음) 2명, '거짓' 1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후 거짓 반응자에 대한 法최면검사와 2회에 걸친 재수사 결과 거짓 반응자는 '동기생이 구 이병에게 '딱밤(꿀밤) 때리는 것을 목격한 상황이 상기되어 거짓말탐지 검사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육군에 따르면 이 동기생에 대해 확인한 결과 구 이병에게 꿀밤을 때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꿀밤을 맞았다는 후임병 등을 다시 조사한 결과 생활관에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계급 구분 없이 서로 꿀밤을 때린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 동기생은 구 이병이 포함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또 집단폭행 당시 옆에 있었다고 지목된 4명의 병사를 수사한 결과 "집단폭행에 가담한 사실이 없으며 고소시 법적대응 하겠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발병자가 취사도우미 지원을 영외 필승회관에서 했다'는 보도에 대해 발병자 수사결과 영내에 위치한 병영식당에서 했다고 진술했다"며 "발병자와 함께 취사도우미를 지원한 2명의 병사와 발병자의 동선 목격자들의 진술을 분석해 볼 때 발병자 행적이 명확하며 집단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사건 초기 헌병대의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 사단 헌병대에서는 수사과장 등 3명이 해당부대로 출동해 당일 부대원 15명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수리와 폭행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3명의 동기생 등을 개별 면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한 차례의 현장 재연과 두 차례의 관계자 수사(19명), 수사설명회(3회), 화장실 바닥의 구토물과 구토물이 묻은 운동복 상의를 수거해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의뢰하는 등 정상적인 초동수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육군 관계자는 "오늘 오후에 구 이병 가족에게 재수사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라며 "향후 관련자들이 민간 수사기관에 고소 등 법적대응을 취할 경우 공조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육군이 이례적으로 구 이병 사건을 재수사해 결과를 신속하게 발표 한 것은, 집단 구타로 사망한 28사단 윤 일병 사건처럼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