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이 남긴 것…흥행-작품성 모두 잡아
↑tvN '미생' 14회
드라마 '미생'(연출 김원석·극본 정윤정)이 끝났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송한 이 드라마는 방송 내내 신드롬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극본을 쓴 정윤정 작가는 최근 인터뷰에서 드라마가 제작되기 전 상황을 떠올리며 "방송 관계자 모두 안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 PD는 방송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딱 1회만 봐달라"고 부탁했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이 가진 아우라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생'은 성공했다.
이런 결과는 단순히 평균시청률 8%(닐슨 코리아 기준)라는 숫자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미생'이 방송되는 날이면 주요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 부문은 이 드라마에 대한 기사로 뒤덮였다. 방송이 없는 날에는 '미생'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드라마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회자했고, 배우들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주목받았다. 시청률을 넘어서는 또 다른 힘이 있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시청자의 반응이다. '미생'에 대한 지지는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20·30대 직장인은 자신을 주인공 '장그래'(임시완)와 동일시했다. 40대는 과거의 자신을 장그래에 대입했다. 회사원 남편을 둔 아내들이 이례적으로 가장의 노고를 위로했다는 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드라마 '미생'이 대한민국 드라마 판도를 바꿔놨다는 평을 내놨다.
'미생'은 분명 달랐다. '미생' 이전까지 회사원의 생활을 이렇게 전격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없었다. 많이들 언급한 것처럼 드라마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남녀 멜로 라인도 없었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또 다르게 각색해내는 데도 성공했다. 반(半) 사전 제작 드라마의 성공 방정식을 풀어내는 데도 공을 세웠다.
최근 몇 년간 '미생'보다 뛰어난 드라마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 잡았다는 말이 '미생'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미생'의 성공 요인과 그 의의를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앞으로 한국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드라마라는 예술의 지향점에 대한 환기='미생'의 성공은 기존 드라마의 통념을 전복해 이뤄낸 결과물임과 동시에 드라마라는 예술이 가장 기본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를 명확하게 구현해 얻은 결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질문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예술의 출발점이다. 드라마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극을 보는 이유는 결국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무엇인가를 느끼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속에 나의 감정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 때, 감상자는 극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것은 '공감'이다.
최근 우리 드라마의 경향은 '공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위 '막장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다. 외국 드라마를 접하는 시청자가 늘면서 장르드라마가 영역을 확대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만, 막장드라마나 장르드라마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 즉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었다. 그 결과는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 하락으로 직결했다.
'미생'을 본 시청자의 반응은 한결같다. "내 이야기 같다." 혹자는 이런 반응을 삐딱하게 보기도 하나 "나와 같다"라는 말이 드라마 존재 이유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해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미생'의 성공은 결국, '극은 지금, 현재, 여기 바로 이 세계와 공명(共鳴)할 때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대원칙에 충실함으로써 받아든 결과다. 주인공 장그래가 막 회사에 입사하는 모습을 그린 1회를 보고 눈물 흘렸다는 시청자가 가장 많았다. 지금까지 단 1회 만에 시청자를 울린 드라마가 있었을까.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미생'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영상 예술로서 사회문화적인 역학을 제대로 상기시켜줬다"고 평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넌 사랑만 하면서 사니?= 그렇다면 이런 공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남녀 간의 사랑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물론 쉽다고 해서 그 가치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보편적이다. 우리는 대부분(모두는 아니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중이다.
보편적인 소재가 '상투'가 되고 '클리셰'가 되는 순간, 그것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최근 한국 드라마는 사랑을 시청률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더 직접 말하자면 돈벌이로 멜로를 사용한다. 시청률이 곧 광고수입으로 직결하는 상황에서 시청자를 움직일 가능성이 가장 큰 방법으로 우격다짐 식 '러브 라인'을 선택했다. 이 탓에 한국의 모든 드라마가 '기-승-전-멜로'의 구조를 가졌다는 우스갯소리는 적절한 표현이다.
'미생'은 주인공들의 허무맹랑한 사랑놀음에 지친 시청자를 다른 방식으로 자극한다. 시야를 넓혀 '삶', 그 자체를 다뤘다.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미생'에 대한 공감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주인공 장그래는 고졸 인턴사원이다. 게다가 낙하산이다. 그가 입사한 회사는 대기업이다. 장그래는 좌절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뛰어난 통찰로 동료를 놀라게 한다. 장그래는 기본적으로 비범하다. '미생'이 회사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도 그렇다. 우리 사회에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다들 "내 이야기"라고 말한다. 왜?
'미생'의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는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인재 몇 명이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너무 싫어하거든요. 그렇다면 서울에 이렇게 많은 빌딩이 왜 필요하고, 많은 창문과 그들을 위한 책상과 불빛은 왜 필요한가…. 저 불빛 하나를 책임진 사람들이 결국 우리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것이고…"
드라마 '미생'에 대한, 장그래에 대한 공감의 원천은 윤 작가의 말에 녹아있다. '미생'은 삶의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모든 인간에 대한 헌사다. 당신의 일상이 하찮은 게 아니라는 격려고 연민이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우리는 '당신의 삶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내 삶은 의미 있다'고 말해야만 한다.
김원석 PD와 정윤정 작가가 한목소리로 드라마 '미생'의 광고 문구를 '그래도 살만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바꾸고 싶었다고 말한 건 그런 의미다.
판타지적인 사랑 이야기만 봐오던 시청자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가슴 속에 들어와 박히는 '미생'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랑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 '미생'은 지상파 드라마가 스스로 설정하고 갇혀버린 '멜로'라는 틀이 그들만의 판타지였음을 보여준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미생'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자신의 세계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어 가고 또 어떤 작은 성취를 이뤄내는 일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보여줬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