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크박스·액터뮤지션뮤지컬 '제9회 DIMF' 개막작
셰익스피어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 '템페스트'가 다양한 은유와 패러디가 넘치는 웰메이드 B급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26일 오후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의 영국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은 즐길 거리가 푸짐한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모티브를 얻어 1950년대 선보인 SF영화 '포비든 플래닛'이 바탕이다. '템페스트'는 아우 '안토니오'의 음모로 영지를 빼앗기고 외딴섬으로 유배된 '프로스페로 공작'이 주인공이다. 그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 아우를 회개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포비든 플래닛'은 프로스페로가 아내의 음모로 우주로 추방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원작을 탈바꿈시켰다. 그의 딸 '미란다'가 '템페스트' 선장이 이끄는 '앨버트로스'호와 우연히 만나면서 갈등과 사랑이 주축이다.
원작에서 태풍으로 난파당한 배는 금지된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선, 작고 깜찍한 소녀의 얼굴을 한 요정 '아리엘'은 프로스페로가 개발한 깡통 로봇으로 변경되는 등 고전의 재해석 또는 비틀기가 일품이다.
◇알면 알수록 즐겁다= '포비든 플래닛'은 셰익스피어, 록, 뮤지컬 그리고 영화에 정통한 사람이면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대사의 상당수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따왔다. 사랑의 관계가 얽히는 템페스트 함장, 미란다, 요리사 쿠키 사이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언어가 울려 퍼지고 프로스페로는 '리어왕'의 대사를 절규하듯 내뱉는다. 그리고 '햄릿'의 '투 비 오얼 낫 투비(To be or not to be)'까지…. 셰익스피어 언어의 상찬이다.
록 팬들은 극이 처음 시작되자마자 놀라움에 뒤집힐 수밖에 없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기타리스트로 천문학자이기도 한 브라이언 메이가 우주선과 영상 연결을 통해 해당 작품과 나아가 우주에 관해 이야기할 때 반가움에 박수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주크박스 뮤지컬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올슉업'을 비롯해 비치보이스, 클리프 리처드 등 로큰롤 기반의 유명 팝 넘버가 쏟아져 내내 어깨와 엉덩이도 들썩거릴 수밖에 없다.
절정은 극 막바지에 흘러나오는 '본 투 비 와일드'와 '미스터 스페이스맨'이다. '본 투 비 와일드'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던 영화 '이지 라이더'(1969)에서 흘러나오던 캐나다 출신의 록밴드 '스테픈 울프'의 곡이며 '미스터 스페이스맨'은 포크 록 그룹 '버즈'가 UFO를 주제로 내세운 노래다.
쿠키 역의 배우 마크 뉴넘이 1막에서 '그녀는 거기에 없어'를 부르면서 독주에 가까운 일렉 기타 연주를 선보이는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를 지닌 곡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하드록 밴드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 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리트(Smells Like Teen Spirit)' 등을 인용하기도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패러디하면서 이 뮤지컬의 서곡이 나오기도 하고 아울러 영화 '미션 임파서블' '귀여운 여인' '황야의 무법자'의 해당 장면을 패러디하면서 OST가 삽화처럼 울려 퍼지기도 한다. 무대, 의상 등과 설정 등은 SF영화의 고전 '스타워즈' '에일리언'을 빌리기도 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정석과 배우들의 호연= '주크박스 뮤지컬'은 인기 대중음악을 가져다가 극적 형식과 얼개로 재탄생시킨 무대 공연물이다.
우선 특정 가수나 그룹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한 스웨덴의 세계적인 팝그룹 '아바'의 노래를 엮은 '맘마미아!', 그룹 '포시즌즈'와 이 팀의 보컬 프랭키 밸리의 곡을 엮은 '저지 보이스'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다. 여러 뮤지션의 음악을 섞지만, 곡들은 같은 시대 또는 같은 주제로 묶은 작품으로 '프리실라'가 대표적이다.
'포비든 플래닛'은 후자의 방식으로 우주선이 불길에 휩싸인 유성을 만날 때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리 리 루이스의 '그레이트 볼스 오프 파이어(Great Balls of Fire)'를 삽입하는 등 이야기 전개에 따라 곡들의 취사선택을 잘했다.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을 풍미한 미국의 팝가수 코니 프랜시스의 '후스 소리 나우(who's sorry now)'를 들려줄 때는 브라스 악기를 사용한 고전 재즈풍의 선율도 잘 살린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실력으로 이를 뒷받침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배우들은 노래와 연기뿐만 아니라 악기까지 함께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을 위한 기량을 갖춰졌다. 쿠키 역의 뉴넘만 해도 기타뿐만 아니라 베이스 등 극 중에서 악기를 계속 바꿔가며 연주한다.
◇총평= SF코믹뮤지컬을 표방하는 '포비든 플래닛'은 화려한 쇼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에게 다소 조악해 보일 수 있다. 무대 전환 없이 극 중 배경도 우주선 내부 하나고 우주 공간과 행성 등 배경을 구별하게 만드는 영상도 화려하지 않다. '템페스트' 원작에서도 나오는 괴물 '캘리번'의 등장도 애니메이션과 무대 위 흐물거리는 다리 몇 개로 처리한다.
하지만 곳곳에 아이디어가 빛나는 동시에 부러 조악해 보이는 B급 뮤지컬의 쾌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우주선 내부의 메인 조종석은 신시사이저와 믹서 등이 포함된 장치로 표현되고 드럼 세트가 부조종석 자리에 있다. 총도 헤어드라이어나 기타로 표현될 뿐이다. 보이지 않게 배우 몸의 한구석에 부착할 수 있는 핀 마이크처럼 감춰진 마이크가 아닌 배우들이 손으로 들고 하는 드러난 마이크로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여느 평범한 뮤지컬의 문법을 파괴하는 이런 방식은 오히려 신선함을 안기고 뮤지컬 장르의 속성 자체를 생각하게끔 한다.
1989년 영국에서 초연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신선한 이유다. 1990년 영국의 토니상으로 통하는 로런스 올리비에상에서 세계 4대 뮤지컬인 '미스 사이공'을 누르고 작품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02년 뮤지컬스타 남경주, 가수 박기영의 주연으로 LG아트센터에서 라이선스 공연한 적이 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당시 작품성에도 너무 앞서간 뮤지컬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면서 "다양한 패러디가 산재하는, 아이디어가 기발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제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사장 장익현·DIMF·딤프)의 개막작이다. 3년 만에 돌아온 배성혁 집행위원장은 올해 작품을 대중성 위주로 구성했다며 '올 뉴 딤프, 고 딤프'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한국 작품인 '꽃신', 폐막작인 체코 뮤지컬 '팬텀 오브 런던' 등 총 5개국 5개 작품이 공식초청작으로 소개된다. 7월13일까지 대구 시내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