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일곱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
▲ © 房玘泰 편집국장 제목으로 뽑은 말은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自畵像) 시구(詩句)인, ‘스물 세햇 동안 나를 키운 것은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를 오마주(hommage)한 것이다. 오마주의 대상은 지난 6월 24일에 세상을 등진 ‘새마을운동 주창자’인 홍선표 옹을 기리기 위함이다. 이승에서 그의 나이는 87세이었다. 여든 일곱 해 동안 살아있을 때에 ‘나를 키운 것은 팔할(八割)이 새마을바람’이다. 남은 이할(二割)은 여줄가리일 뿐이다. 홍성표 옹은 포항 새마을운동의 산 증인이었다. 그는 산 증인에다 새마을운동의 역사이었다. 우리의 근대화 압축 성장에서, 그는 온몸으로 이 땅에 새마을을 심었다. 그의 ‘새마을운동 일생’ 역정(歷程)을 압축하여 설명하면, 1965년부터 1973년간 문성리 마을이장을 역임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새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지원받은 시멘트 335포(당시 가격으로 10만 원 정도)로 문성부락(문성마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데 앞장을 섰다. 당시 영일군 새마을담당 정환성 씨와 힘을 모아 잘살아보자는 의지로 지붕을 개량했다. 그리고 비좁은 마을안길을 넓히는 등 새마을운동의 모범사례를 창출했다. 이에 1971년 8월 문성리에서 ‘형산강의 기적’을 일군 것을 청와대 실사단이 확인했다. 그 해 9월 17일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에 박정희 前 대통령이 직접 문성부락을 찾았다.
이때 홍선표 이장이 마을순시에 나선 박정희 前 대통령을 직접 안내를 맡았다. 눈부신 변화를 이룬 문성마을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성공사례를 본 박정희 前 대통령은 ‘전국시장 군수는 문성마을과 같이 새마을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때부터 그는 살아있는 새마을운동의 전설이 되었다. 평생 문성리 마을을 지키면서 문성리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發祥地)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새마을정신을 이어가고자 증언했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문성리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흔히들 달빛에 물들면 전설이 되고, 햇볕에 쬐면 역사(歷史)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는 살아 있을 때에 어두운 곳을 찾아가면서 달빛으로 캄캄한 길을 밝혔다. 또한 뒤쳐진 그 당시에 근대화를 앞당기는 햇볕이 되었다. 달빛과 햇볕으로 1971년 8월 5일에 새마을운동 관련 국민포장을 박정희 前 대통령에게 직접 전수받았다. 그리고 1980년 12월에는 전두환 前 대통령이 격려문을 직접 발송해 업적을 격려했다. 기록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도 있다. 국민포장과 격려문은 새마을운동의 기록물이다. 본지가 ‘근대화운동의 전설 지다’ ‘새마을운동 선구자·포항 문성리 홍선표 이장 타계’ 등으로 보도했다. 그렇지만 그는 타계(他界)하지 않았다. 역사로써 지금도 살아있는 ‘새마을운동’과 ‘새마음운동’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미래진행형으로 살아 꿈틀거린다.
박정희 前 대통령은 수많은 휘호를 남겼다. 사례를 들면,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1974. 5. 20), ‘강물이 깊으면 물이 조용하다’(병오년 새아침), 勤儉節約 國論統一(1975. 乙卯 元旦) 등이다. 위의 휘호를 살아있던 홍선표 옹이 새마을정신으로 오마주한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대목은 우리도 휘호를 오마주해야 한다. 오마주는 창조경제 활성화이다. 또 국론통일이다. 이 같은 오마주가 당대에서 ‘새마음운동’으로써 현실 구현할 때에 살기 좋은 한국으로 거듭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