房 玘 泰 편집국장
아주 도발적인 제목이다. 도발적인 담배를 설명하기 전에 심산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면, 심산(1879년 7월 10일~1962년 5월 10일)은 일제 강점기 유림 대표로 독립운동을 주관했다. 1919년 광복운동모금 중 체포되었다. 1927년 상하이 일본 영사관에 체포되어 만주국 펑톈 성의 다롄(大連)에서 복역 중 해방을 맞았다. 심산은 ‘글을 아는 투사적인 선비’로서 늠름한 문사(文士)의 길을 걸었다. 심산의 시 한편을 보면, ‘천하는 지금/어느 세상인가/사람과 짐승이 서로들 얽혔네.../아아, 조국의 슬픈 운명이여.../차라리 죽음이여/빨리 오려무나’
이제, 도발적인 위의 제목은 이렇다. 심산이 1943년 임시정부로 보냈던 차남 찬기가 유해(遺骸)로 돌아왔다. 유해를 앞에 둔 심산은 스물일곱에 청상과부가 된 둘째 며느리에게 담뱃대에 불을 붙여달라는 방식으로 담배를 가르쳤다. 담배를 가르침으로써 청상의 외로움을 달래라는 시아버지의 속 깊은 뜻이 아닐까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지금 담배를 배워야할 것이 없는가를 살펴보면, ‘담배 독립투사’가 아니라고 해도 수두룩할 것으로 짐작한다. KT&G의 지난 1분기 잠정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폭증했다. 매출은 18% 오른 1조1,369억 원이다. 영업이익은 무려 64.7%가 뛴 4,285억 3,500만원이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담뱃값 인상이 난데없는 엉뚱한 곳이 최대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분통이 터져, 끓었던 담배를 다시 배우고 싶을 정도이다. 배울 이유는 또 있다. 소득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적 신뢰가 떨어지고 우울증과 이혼, 자살, 살인 등 건강·사회적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황선재 중앙대 사회학과 연구교수는 이런 내용의 ‘불평등과 사회적 위험’이란 연구보고서를 보건사회연구 최근호에 발표했다. 불평등과 사회적 위험 해소를 위해서 담배의 효과는, 담배를 피워본 끽연자만이 알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중 1명꼴로 ‘노인 학대 경험’·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학대나 자살하고 싶을 때에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울 때에 창공(蒼空)으로 퍼지는 자연(紫煙)이 위로가 될게 너무나도 뻔한 사실도 끽연자만이 알 수가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전국 377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를 보면, 대졸자 대기업 취업경쟁률 36대 1이다. 중소기업 문턱도 대졸자 100명이 지원하면 3명만 합격한다. ‘취업절벽’에서 하늘로 치솟는 자연이 위로가 될까. 줄담배를 피워볼까.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도 그렇다. 정규직 임금이 4.3% 오를 때에 비정규직 0.5%만 인상된다. 시간제 근로자 209만 명으로 1년 새 17만5천명 늘었다. 끽연으로는 될 게 아닌듯하다.
다음은 문학판으로 가 본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의혹에 대해, ‘<변신>과 <데미안>의 문학적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미문이 아니라 성찰의 깊이다. 카프카는 현대인의 실존을 ‘벌레’라는 이미지로 포착했고, 헤세는 여전히 18세기 이상적 휴머니즘의 인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프카의 말처럼 문학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한 자루 도끼”와 같은 것이지,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언어의 정원이 아니다.’(김누리)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어지러운 시국을 아파하지 않고 퇴폐적 습속을 통분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중국의 어느 시인은 ‘나라가 불행하면 시인은 행복하고, 나라가 행복하면 시인은 불행하다’란 말이 있다. 어쩐지 신경숙의 표절의혹과 오버랩이 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위 같은 말은 문학판 뿐일까.
이제 중산층 기준을 볼 차례이다. 한국(직장인 대상 설문결과)은 부채 없는 30평대아파트, 월급 500만 원 이상, 자동차 2000cc급 중형차, 통장잔고 1억 이상, 해외여행 1년에 몇 회 이상이다. 영국(옥스포드 大學에서 제시한 중산층의 기준)은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평·불법에 의연한 대처이다. 프랑스(퐁피두 대통령이 정한 중산층의 기준)는 외국어를 하나 정도 구사하여 폭넓은 세계 경험을 갖출 것, 한 가지 분야 이상의 스포츠나 악기를 다룰 것, 사회 봉사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할 것,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은 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것,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그 외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이다. 한국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돈판’의 울분에 담배를 피울까. 말까는 독자의 몫이다.
심산이 자부에게 담배를 가르친 이유가 청상과부 위로에만 있지 않다는 것에 시대를 넘어, 지금도 교훈이 되고 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하여튼 담배를 피우기를 권하는 사회만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만 사회에 권하고 싶다. 지조(志操)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라 규정했다.(조지훈) 이 대목에서 당국이 정책을 집행할 때 지조를 권한다면, 구시대적인 발상일까. 스테판 에셀은 담배가 아닌, ‘분노하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