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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소나기를 기다리며..
사회

소나기를 기다리며

운영자 기자 입력 2014/06/11 21:35 수정 2014.06.11 21:35
설택길/시인
비를 담은 구름이 모여드는 하늘, 검은 빛 윤이 나도록 잘 다듬은 날개를 활짝 펴고 땅위를 낮게 날으는 제비 한 쌍의 지저귐이 이제 곧 초여름의 열을 식혀주는 빗줄기가 시원하게 내릴 것 같다.
짜증나도록 긴 장맛비가 아닌, 잠시 도로위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뜨겁게 내뱉는 매스꺼운 기름내음과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한 구석 어느 곳에도 자리가 없어 허공속에 허우적거리는 뿌연 먼지를 쏟아지는 한 줄기 소낙비가 쓸어가주길 바래본다.
 변화의 이유와 결과만 생각하고 움직이는 세상, 그 변화의 과정에서 보고 느껴야 하는 우리의 쓰고 참담(慘憺)한 기분과 결과 뒤에 느끼고 느껴야하는 무언가 빼앗긴 것같은 우리의 허전한 마음을 매몰차게 덮어놓고 우선 현실을 무조건, 그리고 먼저 변화시키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이 아닌럴지
 지금 살아가기도 바쁜데 고리타분한 옛날 일을 생각해서 뭐하겠냐고 하겠지만 별빛이 선명하던 밤하늘 맑은 밤공기를 쏘이며 넓은 마당 평상(平床)에 앉아있어도 들을 수 있었던 먼 산속의 소쩍새 우는 소리와 어두운 들녘을 지나 강을 넘어 날아온 향긋한 산 내음이 이제는 아주 먼 추억, 어쩌면 전설속 이야기처럼 점점 더 커져가는 자동차소음, 멈출 수 없는 공장의 기계소리에 막혀 아련히 멀어져 가고 있다.
 그 시절의 맛을 못 느껴본 세대들은 그나마 현실의 흐름에 적응하기가 쉽기도 하겠지만 너무도 빠른 변화에 아무리 쉽고 편안 생활이 좋기도 하겠지만 우리 세대가 적응하기에는 힘든 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어느 정도 겪어야 했다.
 산 중턱에 모여 핀 달콤한 진달래의 연분홍 꽃잎들을 볼 때면, 어쩌다 듣게 된 시골 냇가 개울물 소리와 하다 못해 TV에서 보게 된 시골마을의 논과 밭, 어촌 마을, 산촌 마을의 구수함이 느껴질 때면 나도 몰래 고향이라는 정겨운 단어가 생각나는 것이 중년 세대의 마음일 것이다.
 때론 이유도 없이 울어보고도 싶은 나이, 그럴때면 간단히 가방하나 싸들고 혼자만의 여행를 해보고 싶어진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감당(堪當)하기 어려운 시간, 보통열차에서 내다보는 차창밖 계절 따라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경이 아닌 초고속 열차에서 무엇이 지나갔는지 알 수 없도록 빠른 속도로 스쳐가버린 바깥 풍경에서 느끼듯 좀 더 간직하고 좀 더 오래 보고 싶은 것들이 변화하는 현실속에 덤으로 감겨 아쉬움을 남기고 지워져야 하기 때문은 또 아닐런지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어제의 일보다 더 또렷이 기억되는 것은 언젠가부터 잊혀진 아득한 시간이다. 조금씩 또 조금씩 생생히 떠오르는 일들은 우리가 영원히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온갖 힘든 일에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때론 울기도 웃기도 하는 삶속에서 가끔은 들춰 볼 여유도 없이 나도 몰래 가슴깊은 곳에 묻혀져야했던 일들이다. 그리고 세월은 그 삶의 고통이 서서히 줄어들어 자신의 마음속에서 사그러질때 우리는 깊은 곳에 묻혀있던 그 옛날의 자신의 모습, 잊혀진 시간이 다시 떠오르고 또 기억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지난 시간이 허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자신이 흘려보낸 시간에 자신의 피와 눈물과 땀을 마음꼇 모두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롭게 느껴진다면 후회없이 싸워서일 것이다.
 유리창에 묻은 뽀얀 먼지를 씻어주는 한 줄기 세찬 소낙비를 기다리며 나는 문득, 가끔은 자신의 마음속에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신중히 서서히 새로운 것을 담아가되 어느 구석 어느 것에도 해가 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다듬어 갖는 것이 먼 훗날, 비록 흘러간 세월에게 졌다 하더라도 후회없는 도전과 싸움을 했다면 편하게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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