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위로 달이 떴다. 달은 해송 사이로 드러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나와 동행한다. 오래전 조카의 말이 떠올라 웃는다. 친정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다섯 살 조카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었다.
“고모, 그런데 달이 왜 자꾸 나만 따라와요? 달이 민지를 좋아해요?”
어떤 일로 조카를 데리고 가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깜찍한 말은 달을 보면 떠오르곤 한다.
월포 가까이 다다르자 달집태우기 행사 현수막이 보인다. 모래사장에서 달집은 연기를 뿜으며 타고 있다. 생 솔가지 타는 냄새와 바다 냄새가 연기에 묻어난다. 하늘로 오르는 연기는 사람들의 소망을 달에게 전하려는 것일까. 평생 빌었던 엄마의 소망도 저 달에 닿았을까…. 생각해보니 엄마에게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는 경건한 의식 같았다. 아이는 잠결이라도 부엌에서 나는 냄새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달그락 소리는 더 부산했고, 참기름 향은 코를 벌렁거리게 했다. 오곡밥을 짓는 냄새는 깊고 짙었다. 부엌 창으로 드는 빛에는 연기와 수증기, 땔감의 먼지들이 기둥을 만들었다. 아이가 가마솥이 너무 뜨거워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자, 엄마는 가마솥 테두리로 흘러내리는 물을 보고 불 조절을 했다. 불씨가 남은 숯을 아궁이 입구로 꺼낸다. 그 위로 돌김을 굽는 엄마의 손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돌김이 파랗게 익으며 나던 바다 냄새는 달았다. 연탄 위 냄비에는 줄에 매달아 두었던 생선이 무, 두부와 함께 자작한 찌개로 만들어졌다. 아이는 안방과 부엌으로 난 쪽문에 걸터앉기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던 장면들은 살면서 마음이 시릴 때 꺼내곤 한다. 마음 난로가 된 셈이다. 음식의 냄새에는 기억이 배이고 그리움이 깃든다.
엄마의 장독대는 정월대보름에 더 정갈했다. 달이 뜨면 장독대에서 소망을 비셨다. 두 손을 모아 비비면 엄마의 거친 손바닥에서는 바람 소리가 났다. 엄마의 축원문은 말할 때마다 추임새처럼 ‘그저, 그저’가 붙었다. 궁색한 언변을 메우던 단어였을 것이다.
구순이 넘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엄마에게 이제 정월대보름은 어제와 그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인가 보다.
나는 달을 보며 두 손을 모은다.
“엄마, 엄마의 평생 소망들 이제는 제가 빌게요. 엄마의 평온할 모든 순간까지요….”
달집의 불꽃이 사그라들어도 여전히 대보름 달빛은 곱다.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도 달이 따라온다.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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