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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낯선 저녁..
문화

포토에세이 : 낯선 저녁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3/02/23 17:27 수정 2023.02.23 17:28

차를 두고 출근해야 할지를 망설일 그만큼 눈이 내렸다. 겨우 흩날리는 눈발을 보고도 첫눈이라 우기는 터라 밤새 쌓인 눈을 환대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저기서 눈 풍경 사진이 SNS로 들어온다. 나도 호들갑을 떨며 눈 소식을 전한다.
눈에 대한 환대도 잠깐이었다. 한나절이 지나자 차츰 불편을 이야기한다. 도로가 질퍽하다, 어제 세차한 것이 아깝다, 매화가 애써 피었는데 어쩌지, 길에 사람들이 안 다녀서 장사가 더 안된다, 몇 달 만에 볼 친구들과의 약속도 눈길 운전이 부담스러워 취소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하필 오늘 눈이 내려서’라 웅얼거린다. 어쩌면 눈 내리는 날에도 밥벌이를 해야 하는 불만을 그렇게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퇴근하니 주차장에 재밌는 광경이 펼쳐졌다. 차들의 와이퍼가 하늘을 향해 세워져 있다. 눈이 얼 것을 염두에 둔 조치일까. 라디오 음악 때문인지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관객의 모습이 연상된다. 쌓인 눈 위로 어스름이 내린다. 맑은 날의 이맘때와 다른 저녁색이다. 희석된 그러나 우울하거나 가라앉지 않은 느낌의 저녁색을 무엇으로 명명해야 하나.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 하지만 글자들은 뒤섞여 눈 뒤편에 갇혔다.
가로등 불빛의 끝 지점에 눈사람이 보인다. 일 미터 정도의 토끼 모양이다. 눈사람이 아닌 눈토끼라 불러야 맞춤하다. 예사롭지 않은 솜씨가 작품이다. 입체적인 얼굴 모양에 귀는 승리를 담은 ‘V’자다.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아이가 보채서 만든 어른의 작품이든, 중고등학생들의 합작품이든, 어느 예술가의 행위든 대단한 일을 했다. 고단하던 자리에 아침의 들뜬 마음이 다시 들어왔다. 꺼져가는 동심이 차오른다고 할까. 눈토끼의 작품명을 ‘동심소생’이라 붙인다.
나의 동심도 손을 꼼지락거려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본다. 사람들이 오늘을 누리는 방법은 다양했다. 가만히 ‘눈멍’을 하거나, 밖으로 뛰쳐나가 눈싸움하거나, 눈 내린 풍경을 찍으러 나서거나, 눈사람을 만들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 먹거나…. 그 어떤 것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감동을 선물한 것이 된다. 이왕이면 생활 속에서 상황을 즐기며 감동까지 주게 된다면 그만큼 멋진 일이 있을까. 늘 하던 일도 주어졌음이 감사하게 여기는 게 우선이겠다.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찾는다. 없다면 만들 요량이다. 눈 내리는 저녁의 풍경이 낯설지만 따스하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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