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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결국, 환대..
문화

포토에세이 : 결국, 환대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3/03/12 16:32 수정 2023.03.12 16:33

아이들이 떠난 집안엔 발걸음 소리마저 크게 울린다. 몸살인지 한낮이 되도록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커튼을 당겨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가려버린다. 다시 잠이 들었고 한참이 지났을 거라 여겼지만 삼십여 분이 겨우 흘렀다. 간단하게라도 요기할 요량으로 일어났다.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오는데 몸살 때문만이 아닌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보일러 소리가 요란하더니 결국 고장이다. 휴일이라 서비스 접수가 되지 않는단다. 세수하려는데 수도꼭지를 한참 틀어놓아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보일러가 고장이라는 걸 그새 잊었다. 울컥 서러움이 복받친다. 이게 울 일인가 싶으면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결국 식탁 의자에 앉아 엉엉 울어버린다. 누군가는 그런다. 갱년기 앓이가 시작되는 거라고.
나이가 들수록 울어도 되는 상황에는 애써 덤덤하다. 나름 어른 체면치레를 하느라 그런가. 그러다가도 정작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순간에 터지고 만다. 상대의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본다거나, 인사치레로 간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을 보며 주책없이 눈물을 흘리곤 한다. 눈물샘이 내 의도대로 열리고 닫히지 않는 것이 문제다.
창문을 가린 커튼을 젖힌다. 젖힌 커튼의 폭만큼 봄볕이 기둥을 세우고 들어선다. 볕의 기둥이 옅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울감에 점령당할 것 같아 집을 나서기로 한다. 노트북과 책을 챙겼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르바이트생의 경쾌한 인사가 정신을 깨운다.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이 참 예쁘고 고맙다. 신입인 듯 보이는 동료에게 나를 ‘단골손님’이라 칭한다. 그 말에 웃게 되는 건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반가워서 일 것이다.
평소대로 이층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읽다 말고 생각한다. 예고 없이 찾아든 우울감과 예상치 못한 환대를 노트에 긁적인다. 우울도 환대도 내 감정에 찾아온 손님이다. 껄끄러울 수도, 반가울 수도, 감정을 감출 수도, 드러낼 수도 있는 서로 다른 부류의 손님이다. 두어 시간 지나 카페를 나왔다.
바람에 어깨를 움츠린다. 차에 앉자 조명이 켜진 건물 위로 달이 보인다. 고요하고 따뜻한 느낌의 달이 마주한다. 가만히 웃어주는 선배의 얼굴이, 한결같은 친구의 얼굴이 겹친다. 반기는 것에 굳이 요란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환대’는 세상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지도. 어릴 적 보물찾기하듯 더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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