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등 회의감… “혁신·결집” 54%
21대 대통령선거가 끝 난후, 자신을 보수 성향이라고 여기는 상당수의 유권자가 정치적 무력감을 넘어, 자괴감에 빠진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정치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 같은 사람은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질문에 46%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특히, 자신의 이념 성향을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의 57%가 ‘그렇다’가 답했다. 진보층은 34%였다.
또 ‘정부가 나 같은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에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보수층에서 61%였고, 진보층(31%)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여론분석 전문가는 “보수층의 경우 지난 6개월간 계엄사태와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패배를 겪으면서 정치적 결과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념 성향에 따라 선거에 대한 '신뢰도'도 갈렸다.
‘21대 대선이 얼마나 공정하게 실시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7%가 ‘신뢰한다’고 답했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1%로, 신뢰한다는 의견이 2배 이상 높았다.
하지만 보수층의 경우 ‘신뢰한다’ 38% vs ‘신뢰하지 않는다’ 36%로 엇비슷했고, 진보층에선 83%가 ‘신뢰한다’고 답했다.
‘부정선거에 공감’하냐는 질문엔, 보수층에서 과반이 넘는 58%가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진보층에선 84%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가기관 신뢰도 평가(매우 불신 0점, 매우 신뢰 10점)에서도 성향에 따른 결과 차이가 뚜렷했다.
보수층에선 국회 2.6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2.8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0점으로 전체 응답자(국회 3.7점, 공수처 3.8점, 선관위 4.3점)의 평가를 밑돌았다. 반면, 진보층의 경우 국회 5.0점, 공수처 4.9점 선관위 5.7점이었다. 검찰에 대한 신뢰도는 보수 4.0점·진보 2.4점으로 모두 낮았다.보수층은 한국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도 48%가 ‘민주적이지 않다’고 응답해, 진보층의 51%가 ‘민주적’이라고 답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 조사에서 국민 3명 중 1명(36%)은 ‘계엄사태’를 보수 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윤 정부를 둘러싼 보수 정치인의 내분(20%)과 윤 정부의 실정(19%), 극우 강경 보수 노선(11%), 대선 후보 단일화 불발(6%)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 중 진보층(39%)과 보수층(31%)을 가리지 않고 계엄을 1순위 원인으로 꼽았지만, 2순위부터는 의견이 갈렸다. 내분(26%), 실정(14%), 단일화 불발(10%) 등을 꼽은 보수층은, 분열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진보층은 실정(25%), 극우 노선(15%) 등을 꼽았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윤 정부의 실정 속에 보수 주류는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서 계엄사태로 자멸했다는 게 국민의 대체적인 인식”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후보 교체’ 파동도 악재였다는 평가다.
대선 경선에 대한 응답자 평가(10점 만점)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경선은 5.4점이었지만, 국민의힘 경선은 3.1점에 그쳤다. 보수층에서도 잘못했다(0~4점)는 응답이 47%로, 잘했다(34%)는 응답보다 많았다. 결국, 위기에 빠진 보수 진영을 재건하려면 윤 전 대통령 등 계엄 관련자와의 절연(26%)을 최우선 과제로 나타났다.
이어 계파 청산(15%), 아스팔트 우파 및 보수 유튜버 단절(15%), 기득권 정당 이미지 탈피(14%), 청년 리더십 발굴(9%), 경쟁력 있는 핵심 어젠다 구축(8%) 순이었다. 보수가 지향해야 할 핵심 어젠다의 방향으로는 경제 위기 극복에 초점을 둔 능력 있는 보수(38%), 법과 질서를 지키는 전통적 보수(32%), 사회적 약자에 손을 내미는 따뜻한 보수(13%), 신산업과 신문화에 대응하는 젊은 보수(9%)가 제시됐다.
특히, 보수 재편을 위해선 혁신과 결집(4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새 정당을 창당(32%)하지 말고, 보수 재건을 하라는 것이다. 응답자를 보수층으로 좁히면 혁신과 결집(54%)을 원하는 비율이 과반을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층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 보수 재건이 쉽잖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 전 국민의힘 후보를 뽑았다는 응답자들은 윤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10점 만점)에 대해 5.3점을 줬다.
특히, 잘했다(6~10점)는 응답(47%)이, 잘 못 했다(35%) 응답보다 12%포인트 더 많았다. 전체 응답자 기준, 국정 평가 점수가 2.6점이고, '잘못했다'(0~4점)는 응답이 71%, '잘했다'는 응답은 19%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패배 직후 열린 의원총회(5일)에서 탄핵 반대 당론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는 등 변화를 머뭇거린 데는 보수 지지층 ‘눈치 보기’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하다.
이번 조사는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6월 4~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웹조사 방식으로 진행했고, 응답률은 40.2%,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2.5%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김상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