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심장 포항에 민주당 시장이 나올 수 있을까. 질문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게 지역 정치 정서다. 진보 진영에서도 회의적이다.
한마디로 꿈 깨라는 이야기다. 현실성 없는 주장을 하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 취급 받는다고 충고를 해온다.
과연 이 논의는 정말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까?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 수 없다’고 보수 진영이 안이하게 외면해도 괜찮을까.
보수 정권이 무너지고 진보 정권이 들어선 지 한 달 남짓이 지났다.
보수 진영의 가장 큰 두려움은 “재매이가 잘 해버릴까봐”라는 말로 요약된다. 무엇을 잘 하고 못하느냐는 해석의 영역이지만, 국민 다수가 “잘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 정치 구도는 달라진다.
비상계엄 이후 국민은 위기의 정부를 뽑았다기보다 위기 속에서 희망을 택했다. 이제는 바보짓만 안 하면 칭찬받는 국면이다.
근거가 희박한 문서에 따르면 내년도 포항시장 출마예상자가 열일곱 명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보수 진영은 전당대회 일정조차 불확실하고, 누가 당대표가 되어도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수 후보들은 시장 출마를 노리며 일찌감치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오랫동안 포항 정치에 발을 담가온 지인들에게 ‘민주당 포항시장 가능성’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말인가 막걸리인가” “아예 꺼내지도 마라”였다.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에서 같은 반응이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기는 게 글쟁이 ‘곤조’ 아니던가. 몇 가지 가정으로 기어이 짚어보고야 만다.
첫째, 후보자의 자격이다. 단순히 민주당 당적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실력과 경륜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의 신뢰를 이미 획득한 인물이어야 한다. 시민들과 오랜 시간 호흡하며, 보수든 진보든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함과 품격을 갖춰야 한다. 무
엇보다 ‘당선되면 잘 할 사람’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실천력,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시민 앞에서 떳떳한 도덕성까지 갖춰야 진짜 후보라 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다. 포항은 보수의 핵심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만큼 중앙당이 의지를 갖고 전략 지역으로 설정해야 한다. 후보만 보내고 끝나는 선거는 실패가 뻔하다.
지역조직, 메시지, 미디어 전략, 여론관리, 정책 컨설팅까지 모든 지원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장 중심 캠프와 중앙당이 매일 호흡하며 포항의 민심 변화를 함께 분석하고 대응해야 승산이 있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함께 치르는 전쟁’이 되어야 한다.
셋째, 유권자의 기대를 읽는 능력이다. 지금 포항 시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절망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단순히 복지 공약 몇 줄 늘어놓고, 양당 정치 피로감을 자극하는 말만 해서는 안 된다. ‘살기 힘들다’는 말 뒤에는 일자리, 교육, 교통, 지역소멸, 청년 탈출 같은 복합적 불안이 숨어 있다.
그 복합적 감정을 읽고, 그 감정에 대답하는 후보가 필요하다. 정당보다 사람, 정쟁보다 삶을 말하는 후보가 설득력을 갖는다.
넷째,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다.
선거는 결국 물적·인적 자원의 싸움이다. 민주당이 포항에서 보수 정당과 자원에서 정면 승부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전략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유세보다 여론전, 대중집회보다 공약 전달, 전면전보다 틈새 전술. SNS 활용, 핵심 지역 타겟팅, 핵심 세대(40~50대 중산층) 설득 전략, 지역 언론 및 오피니언 리더와의 연대 같은 세밀한 전략이 자원을 몇 배로 증폭시킬 수 있다. 기득권을 유보하고 적은 자원이라도 효율적으로 써야 승산이 있다.
이 모든 전제를 만족시킨다고 해도 여전히 불가능한 이야기일까. 고 허대만 후보가 문재인 바람을 타고 얻은 43% 지지를 뛰어넘는 여당 프리미엄 효과가 나올 수는 없을까.
이재명이 문재인보다 더 강한 정서적 연결고리를 지역사회에 만들어낼 수 있다면? 국민주권정부가 포항을 전략적 지역으로 삼아 깃발을 꽂으려 한다면?
정치는 모른다. 예측은 가능하지만 단정은 위험하다. 누가 되든, 포항의 백년대계를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 인물이 민주당이어도, 무소속이어도, 포항 시민이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길 바란다.
무의미한 이념 논리에 갇혀 정말 필요한 사람을 가려내는 과업에 언제까지 실패할 것인가.
진보 보수 양 진영에서 제대로 된 인물이 나와서 당적 간판 떼고 진검 승부를 펼쳐주길 바란다.
‘과메기도 공천되면 당선’이라는 무뇌 유권자 타령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