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8월이 오면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1910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셨다. 그해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해에 태어난 셈이다. 아버지는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험하고 고달픈 일을 하며 돈을 모으셨다. 고향 예천으로 돌아와 그 돈으로 척박한 농지를 조금씩 마련하고, 자식들을 공부시키셨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태어나 가해자의 나라에서 돈을 벌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땅을 사고 자식을 길러낸 삶. 지금 생각해도 가슴 한편이 아득하고 먹먹하다.
그 아버지의 아들이 이제 강단을 떠난다.
30여년 품었던 공무원증을 반납하고 대학 강의실을 나선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퇴임을 조금은 ‘해방’이라 느낀다. 아버지의 해방이 나라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거대하고 뜨거운 역사적 사건이었다면, 나의 해방은 오랜 공직의 무게를 벗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소박하고 조용한 자유다. 두 해방의 무게는 다르다. 그러나 두 해방이 마주 보는 8월에, 나는 독도를 생각한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의 혼란 속에서 독도를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했다. 그리고 5년 뒤, 한반도 전체를 삼켰다. 나라 전체를 빼앗기기 전, 바다의 작고 외로운 섬 하나가 먼저 침탈의 시험대가 되었다. 독도는 광복의 역사이기 이전에 국치의 역사다. 8월 15일의 환희 뒤편에는 8월 29일의 치욕이 조용히 등을 맞대고 있다.
패배의 역사도 역사다.
치욕과 실패는 부끄러워 숨길 대상이 아니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꺼내 들어야 할 ‘역사의 백신’이다. 아픈 상처를 직시하는 것은 과거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시는 아프지 않기 위함이다.
내가 평생 독도를 이야기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독도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거나 집 한 채를 지을 일은 없다. 그럼에도 독도를 놓을 수 없는 까닭은, 그 작은 섬에 우리가 어떻게 국권을 잃었는지, 힘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스스로 지키지 못한 국가가 어떤 처절한 운명을 맞았는지가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생 국제법을 가르쳤다. 인류는 수많은 피를 흘리며 법과 규범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현실의 국제사회는 여전히 차갑고 냉혹한 힘의 논리에 흔들린다. 법은 존재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기구는 존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무력해진다. 강단을 떠나며 솔직히 고백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법과 규범을 더욱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힘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한 나라의 평화는 언제든 조용히 무너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켜주겠지.’ ‘설마 무슨 일이 다시 일어나겠어.’ 그 달콤하고 무거운 안일함이 고개를 드는 순간,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던 뼈아픈 기록이다.
8월 15일의 광복과 8월 29일의 국치는 하나의 역사다. 치욕스러운 그날을 기억할 때 비로소 광복의 온전하고 무거운 뜻을 지켜낼 수 있다.
아버지가 맞았던 해방과 내가 맞는 해방의 자리는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다짐만은 같다.
다시는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독도는 내가 소유할 재산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고 지켜내야 하는지를 깨우쳐주는 시대의 등대다. 올해 8월 29일에는 광복의 환희 곁에 그 아프고 쓸쓸한 날도 함께 올려두었으면 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나라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땅을 가르쳐온 내가, 시민으로 돌아가며 드리는 마지막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