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원자력의 의미
▲ © 염명천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1992년 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재생에너지가 주목받고 있지만, 의미 있는 대체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너지기구(IEA)는 나무, 축분 등을 뺀 풍력, 태양광 같은 기술집약성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12년 1%에서 2040년 5%로 예측할 뿐이다. 정부보조금과 기술발전을 전제로 삼아도 결국 유의미한 물량으로 화석에너지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지구 상 에너지는 태양 에너지가 대부분이다. 첫째는 태양의 빛과 열이다. 태양열은 비와 바람을 일으킨다. 이것을 이용한 것이 재생에너지다. 둘째는 화석에너지다. 빛과 열로 수억 년 동안 지구를 비춘 태양에너지가 탄화수소 형태로 지하에 응축된 것이다.
오래 저장된 에너지를 일순간에 뽑아 사용하므로 재생에너지보다 수만 배, 수십만 배의 효율이 있다. 불로 태우는 연소(燃燒), 동물의 내장 내 소화(消化), 대기 중 산화(酸化)가 같다. 태양에너지가 아닌 에너지로 원자력이 있다. 또 중력, 파동 등도 있다. 화석에너지는 수소, 산소, 탄소분자가 분리하고 결합하면서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출하지만, 원자력은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를 깨부수며 에너지를 방출한다. 물질을 근원에서 바꾸므로 에너지 방출량이 화석에너지의 수만 배이고, 원상회복에 장구한 세월이 걸린다.
효율이 높지만, 위험하다. 그러나 정도가 다르지 화석에너지도 재생에너지에 비하면 효율 높고 위험한 에너지다.
IEA는 화석에너지 비중이 2012년 81.7%에서 2040년 74.5%가 될 것으로 봤고, 원자력 비중은 4.8%에서 6.6%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화석에너지 사용은 어쩔 수 없다. 원자력은 위험하나 경제성이 아주 좋고, 원료가 풍부하다. 1950년대에는 21세기에 원자력이 전 세계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담당해 인류의 에너지 걱정을 없애줄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실제 원자력은 위험성만 잘 관리하면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가능하다. 원자력의 위험성은 방사능 누출이다. 폐기물과 폐로의 처리 문제도 여기서 파생된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은 원전 포기를 선언했고, 일본도 따랐다.
그러나 프랑스, 영국, 미국은 원전 지속을 고수했다. 프랑스는 전력의 80%를 원자력으로 공급하고, 미 해군의 잠수함과 항모는 대부분 원자력 추진이다. 중국과 인도는 대대적인 원전 건설을 진행 중이다. 한국은 위험성이 낮아진 스마트 원전을 중동 국가들에 수출하기로 했다. 원전 포기를 선언한 나라는 대부분 에너지 수요가 정체 혹은 감소하는 국가다. 원전 정책을 가르는 요인은 에너지 안보에 대한 절박성이다.
중동국가가 원전 건설에 주력하는 것은 석유의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원전 정책이 정반대인 것은 석탄 자원의 유무가 배경이다. 세계 각국이 원전 건설에 주력한 때는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였고, 1980년대 중반 국제유가 하락은 반원전 분위기를 키웠다. 2000년대 유가 속등은 원자력 르네상스를 불렀다. 근래 미국의 셰일가스 증산이 원전 산업을 침체시킨다는 전망도 있다.
원전의 선택은 철학이나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여건의 문제다. 인력과 기술밖에 없는 한국을 세계 4대 강대국이 둘러싸고 있다. 최근 아시아국제투자은행(AIIB)과 사드(THAAD)문제는 한국이 100년 전 조선의 옹색한 형편에 다시 와 있음을 데자뷔로 보여준다.
세계에너지협의회(WEC)가 발표한 2014년도 한국의 에너지 안보 순위는 조사대상 129개국 중 98위, 에너지 자급도 순위는 110위다. 에너지 수입액은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선박 수출액을 합한 금액에 맞먹는다. 이러한 에너지 안보 여건에서 원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말, 불, 화약, 범선, 자동차, 비행기 등은 모두 위험한 물건들이었다. 위험에 대한 관념이 집단의 운명을 갈랐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빈곤해서도, 부패해서도 아니다. 나약해서도 아니다. 실제로는 위험한 총과 대포가 없어서 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