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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김찬곤의 세상 톺아보기..
사회

김찬곤의 세상 톺아보기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5/05 15:41 수정 2015.05.05 15:41
‘스튜어디스의 키’와 ‘타당도’

▲     ©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  아파트 공사현장의 야간 경비원을 뽑을 때, 과연 어떤 기준을 채용조건으로 하면 좋을까? 지원자가 많을 때, 공정하게 선발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기업체에서 채택하고 있는 ‘토익’점수를 주요 잣대로 삼는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영어실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잘 된 기준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영어는 야간에 경비를 하기 위한 중요한 필요조건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의 신체적 조건이나 야간활동능력, 과거의 일정한 경험 등이 채용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튜어디스를 선발할 때 신체조건을 따진다는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하여 몇 년 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지적사례가 ‘키’에 대한 규정이었다. 현재도 대한항공은 여승무원의 키를 ‘162cm 이상’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어서, 그 이하의 여자들은 승무원시험에 아예 응시조차 할 수 없다. 우리나라 20대 평균 키가 160.3cm 이니까 항공사가 제시한 키의 하한선이 1.7cm나 크다는 점 때문에 그런 규정이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견 이런 신체조건에 대한 항공사의 규정이 지나치게도 보인다. 그러나 항공사의 설명을 들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비행기 내 천장에 붙어있는 선반을 여닫을 만큼의 높이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키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받침대를 디디고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좁은 기내에서 이 같은 행동을 하기란 매우 불편할 성싶다. 한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 항공은 158cm,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은 152cm 등으로 비교적 작은 키에도 응시할 수 있지만, 이 때 암 리치(arm reach : 팔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길이)는 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키가 작더라도 팔이 긴 사람도 있을 터이니 ‘암 리치’로 작은 키를 보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신체적 조건을 채용의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는 사례다. 작은 키로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큰 키의 무능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인하는 입장에서 보면 꼭 필요한 기준이 신체조건일 수도 있을 것이므로, 그런 차원에서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인권차별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높은 토익점수를 받아 합격한 사람이 만약 야맹증환자라면 어떨까? 그리하여 채용된 후 밤에 아예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하면 어떨까? 매우 똑똑하여 뽑힌 여승무원의 키가 너무 작아, 승객이 가방을 선반에 넣어달라는 부탁에 대해 “죄송합니다. 팔이 닿지 않아 넣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할 수는 없지 않는가? 어떤 일에 적당한 사람을 뽑고자 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바로 그 런 기준이 학문적으로 타당도(validity)라고 한다. 즉, 어떤 대상의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준거인 셈이다. 그러니까 야간경비원을 뽑을 때 단순히 ‘토익점수’ 만을 선발기준으로 보는 것은 타당도 없는 것이며, 항공사 스튜어디스를 뽑을 때 키를 중요 변수로 삼는다는 것은 타당도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권위가 다루는 문제는 보편타당한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지, 승무원의 키에 대한 규정이 인권에 위배되어 없애지 않으면 처벌 한다는 취지는 아닐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키가 전혀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직종에서의 그런 규제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요긴할 때가 있을 개연성의 직종에서는 인권무시나 차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스튜어디스의 키는 다른 어떤 업무능력만큼 중요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키의 사람들에 대한 신체적 차별개념이 아니라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 대비한 잠재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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