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대만 새정치연합 포항남 · 울릉위원장 최근 들어 사무실에 정기적으로 오기 시작한 우편물 중에 크게 관심이 가는 대상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정치민주연합 전남도당 당보다. 전남도당 소식이나 지역현안, 지역위원회 소개, 정책, 칼럼, 인터뷰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는 기사는 ‘DJ와 그의 사람들’이라는 기획 연재기사이다. 최근 중앙 일간지들도 유행처럼 정치인들의 회고를 연재하고 있는데, 정치비사는 언제 들어도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 연재기사보다 나의 눈길을 더 끌어 당기는 기사는 전남도당의 회계를 공개하는 기사이다. 매월 전남도당에서 일어난 모든 수입지출을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연초에 새롭게 도당위원장으로 선출된 황주홍 의원이 시작한 일이다. 국고보조와 당원들의 당비로 이루어진 도당의 수입지출을 공개하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으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집행내용에 대해서는 추상같은 감사를 하는 지방의원들도 우리당에는 많지만 같은 국고보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당비의 지출내역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제대로 따지거나 공개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랜 관행이었다. 이런 관행을 조용하게 깨트린 것이 전남도당이다. 작은 변화일 지 모르지만, 이것은 앞으로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시도당 중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전남도당이 앞장 서서 회계를 유리알처럼 공개하는데, 규모가 더 작은 다른 시?도당이나 중앙당도 못할 이유가 없다.
정당회계라고 공개하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당한 이유도 투명하지 못한 회계나 정치자금 운용에 있다. 수입과 지출의 실태를 온갖 편법을 동원해 왜곡하고 실제와 다른 회계보고서를 만드는 관행이 뿌리 깊었다.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이다. 공개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도 모두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를 받아 사용했다면 예외없이 투명하게 이를 공개해야 한다. 두 말이 필요없는 일이다. 시도당뿐만 아니라 중앙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세금인 국고보조가 낭비없이 생산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처럼 선과위에 정기적으로 회계를 보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당원과 국민들에게 전남도당같이 먼저 공개못 할 이유가 없다. 당원들이나 국민들은 당연히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작은 계모임이나 사회단체도 구성원들에게 그 회계를 공개하는데, 정당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차제에 비현실적인 정치관련 법률도 고쳐야 한다. 회계를 공개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사실은 정치관련 법률의 비현실성에 있었다. 예를 들면, 전당대회를 할 때 지방의 당원들이 서울까지 버스를 빌려서 타고 가야하는데, 중앙당이 지역당에 버스비 지원하는 일을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금지하고 있었다. 분명 중앙당 예산에는 우리가 낸 당비가 포함되어 있는데, 중앙당이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했었다. 이러니 교통비 지원은 비공식화 될 수밖에 없었고 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모두가 죄의식 없이 하고 있고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을 법이 금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니 편법이 난무할 수밖에 없고 결국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비현실적인 법률이 편법과 비공개를 조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정치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故성완종 회장의 불법정치자금 폭로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야를 가릴지 않고 다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공개된 부분보다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법률이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을 더 크게 만들어 왔다. 정치관련 법률이 대부분 그렇다. 현실적인 규정을 도입하도록 하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정치자금도 규모를 제한하여 비공식 부분을 크게 하기보다 규모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정치인이 누구의 후원으로 활동하는지를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규모를 통제해 비공식 부분을 크게 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에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다. 모두들 알고 있으면서 비난이 무서워 현실적으로 고치기보다 편법과 비공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회에 문제를 정직하게 드러내 놓고 현실에 맞는 제도로 고쳐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