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와꼼수
▲ © 나영철 구미취재 본부장 바둑에는 재미 있는 말이 많다.
攻彼顧我(공피고아)라 해서 상대편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의 약점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라든지,捨小取大(사소취대)는 사소한 이해득실보다 큰 것을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들이 그것이다. 또, 적이 강한 곳엔 가지마라는 이야기며, 聲東擊西(성동격서)라고 해서 공격하고자 하는 쪽의 반대쪽을 먼저 쳐라는 이야기며, 그밖에도 적재적소에 쓰이는 말들이 많다.
이는 모두 盤上(반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생존경쟁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도 많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대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가 깊은 말이 하나 있다. ’한판에 묘수가 3번 나오면 반드시 패하고 만다’는 묘수필패론이 그것이다. 얼핏 들으면 이해가 잘 안가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바둑에 있어서 묘수란 번득이는 지혜 같은 것으로 궁지에 몰려 쩔쩔매다가 기사회생한다거나, 상대방에 도리어 역공을 가하는, 이를테면 절호의 찬스를 만들어 내는 방책을 말한다. 하지만 묘수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짜낸다고 쉽게 얻어 지는 것도 아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거나 기적처럼 영감으로 떠오르는 것이 묘수다. 그런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은 이 묘수가, 한 판에 하나만 얻어내도 판세가 금방 역전이 될 터인데, 세 번이 나오면 반드시 패한다니, 그것도 반드시 패한다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따지고 보면 묘수란 응급처방이다. 응급처방은 사실 한번으로도 불안한데, 세 번씩이나 당했으니 그 판이 흔들릴 건 뻔하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해온 사람에게는 구급약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세의 흐름에 따라 바둑을 두는 사람들 한테는 묘수란 아예 필요한 것이 못된다. 즉, 정상적인 방법 속에 묘수가 자연스럽게 포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나 경제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통 한다. 바둑도 하나의 擧事(거사)여서, 그 진행의 흐름이 유연하지 못할 경우 다시 말해 길이 막혔거나 끊어지면 묘책을 찾아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 비상수단으로 쓰는 것이 바로 묘수이다. 묘수는 결국, 위기의 순간을 잔재주로 넘겨보자는 재치일 뿐이지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먼눈팔고 방심하다가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경제가 마구 흔들리면 그 제서야 얄팍한 미봉책으로 땜질을 한다거나, 치안불안이 극도에 달해 급기야는 범죄한테까지 어마 무시한 전쟁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는 일들은 정책의 부재에서 오는, 바둑으로 보면 묘수에 지나지 않는 잔재주일 뿐이다. 요즘 우리 주변엔 모든 일을 지나치게 묘수에 의존 하려는 묘수론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그런데 여기서 묘수필패론자보다 더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다. 물론 바둑용어다.
‘下手(하수)일수록 묘수를 밝힌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또, 요즘 이것도 있다 ‘꼼수’. 꼼수의 사전전적 용어는 [명사]로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정의되어 있다. ‘묘수와 꼼수’ 한번 음미해볼 낱말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