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物名攷, 그 ‘白頭에서 漢拏까지’
▲ © 房 玘 泰 편집국장 글쓰기에서 잠깐 글 걸음을 멈추고, 물명고(物名攷)부터 살피면, 이 단어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분류 어휘집(語彙集)이다, 조선의 한글학자이며, 박물학 대가인 유희(柳僖,1773년~ 1837년)가 쓴 말이다. 그는 1791년(정조 15) 향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향촌에 묻혀 농사지으면서 글을 읽었다. 그가 53세 되던 해인 1825년(순조 25) 생원시를 거쳐 1830년(순조 30) 황감제(黃柑製)로 과거에 합격했다.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는 실학자이며 음운학자인 정동유(鄭東愈)의 문하에서 한글을 독창적으로 연구했다. 훈민정음의 자모를 분류하면서, 한글 학자로서 면모를 여실히 보였다. 그리고 ‘백두에서 한라까지’는 신동엽 시인인 ‘껍데기는 가라’에서 따온 시어(詩語)이다. 돈 물명고(物名攷)를 말하면서, 위의 시는 돈과는 전혀 무관한 어휘(語彙)이다. 그럼에도 이곳으로 가져온 이유는, 어차피 시 읽기는 독자의 몫이기에 그의 시를 오독(誤讀)해도 아무 탈이 없을뿐더러 흰눈질을 당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여기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는 돈 세상이다. 돈의 빈곤과 부(富)가 이 사회를 뒤덮는 현상을 말하고자 할뿐이다. 이따금 이글에서 인용한다.
우선 돈 세상을 짚어보면, 1억 원 이상 상장주식 보유 어린이는 121명이다. 100억 원이 넘는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어린이 주식 부자가 8명이다. 이 중 7명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손자와 손녀들로, 총 1천8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했다. 지난 5월 4일 재벌닷컴이 조사한 결과이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손주 7명은 각자 보유한 주식의 시가평가액이 200억 원을 웃돌면서 상위권을 휩쓸었다. 이들 어린이들은 상장사 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이다. 특수는 바로 부의 대물림이다. 세습이다. 증여세는 얼마인가 궁금하다.
꼭 이들은 아니라고 해도, 부자들의 씀씀이를 보면 ‘억~!’하는 소리가 절로 터진다.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인 ‘로저 드뷔’의 벨벳 36mm오토매틱 하이 주얼리는 값이 5억 원이나 된다. 304개의 다이아몬드(총 13.61캐럿)가 박혀있다. 1억6천800만원에 이르는 스웨덴 명품 침대 브랜드인 ‘해스텐스 비비더’이다. 2009년산 프랑스 와인 ‘조르쥬 루미에 뮈지니 그랑크뤼’의 판매 가격은 한 병에 3천50만원이다. 호텔 더 플라자는 한 끼 식사가 50만원이다. 70명분 예약을 받았다. 출시 이틀 만에 완판 됐다. 없어서 못 파는 것들이다. 위 같은 물건들을 집안에 들려놓는다면, 아방궁(阿房宮)이 되는가.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가. 험난하고 핍진(乏盡)한 세상이 즐겁기만 한가.
경위야 어떠하든 간에 일반적인 소비자라면, 누구든 구매할 수가 있던 제품을 판매자가 가격을 올림으로써 그 같은 가치를 가진 것처럼 둔갑하는 순간에 고객들에게 더없이 ‘숭고한 제품’이 되는, 베블린 효과(Veblen effect)를 말하는 것으로 단정해도 좋다. 스놉 효과(snop effect)도 있다. 이 효과는 가격이 비싸서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의 하이클래스 제품, 명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다른 사람들의 수요가 특정 제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1950년 미국의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이 발표한 이론이다. 부의 교환가치로써 일상용품이 아닌,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일 뿐이다.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 우리는 자본에 노예 됨에 자발적으로 봉사한다. 봉사가 지나치면, 그다음부터는 돈을 벌기위해서 스스로를 착취하는 지점까지로 가게 된다. 이를 껍데기라고 말한 시인이 위의 시인이다. ‘껍데기는 가라/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이 시에서 쇠붙이를 돈으로 오독(誤讀)한다. 돈 놀음에 시인이 사자후(獅子吼)를 토한 대목이다.
다음에서 ‘돈 없는 놀음’을 한번 짚어보자. 한국은행이 공개한 ‘2월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을 보면, 2월 말 기준 예금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상호금융 등)의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750조3천억 원이다. 전달보다 3조8천억 원 증가다. 1∼2월을 합산한 가계대출은 작년 12월말 대비 4조4천억 원 늘었다. 작년 1∼2월 증가액인 1조원의 4배가 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부(國富) 1경1천조 89%가 부동산이다. 한은-통계청이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이다. 국민순자산 GDP의 7.7배이다. 돈이 없는 놀음에서 벗어나려면, 땅 놀음을 해야 한다. 돈이 집중되는 곳이 지금까지도 땅이다. 한은과 통계청이 온 국민들에게 땅에 투자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하고 있는 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우리나라 가계 소득 및 자산 분포의 특징’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가계단위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4259이다. 순자산 지니계수는 0.6014이다.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보다 수치가 높았다. 지니계수는 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는가를 나타내는 지수이다. 0에서 1까지의 수치로 나타낸다.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뜻을 지닌다. 게다가 한국 노인빈곤은 OECD에서 최악이다. 연금소득도 최하위권이다. 빈곤율은 48.6%이다. 연금 소득 대체율 45.2%로 평균 이하이다.
소설가 톨스토이는 ‘돈이 없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돈이 두 배로 많은 것은 더 슬픈 일이다.’ 모든 것을 싹쓸이하는 승자독식인 신자유주주의 시대에서도, 과연 두 배로 슬픈가. 여기에서 신동엽 시인이 외친, ‘껍데기는 가라’가 유효할까를 묻는다. ‘껍데기는 가라/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가라니, 어디로 가란 말인가를 묻는다. 인도(人道)에서 차도(車道)로 가서, 보편복지를 외치란 말인가. ‘있는 자‘도 ’없는 자‘도 없는 공정·공평을 희구(希求)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