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뺏기'도 쉬워질까
"공무원입니다."
최근 만난 한 은행권 홍보팀 직원은 자신을 이렇게 낮췄다. 세간에서 '은행맨'을 바라보는 시선과 궤를 같이 한다. 그의 표정에서 은행맨들의 자조와 긍지가 동시에 묻어난다.
사실 이제 금융권에서 은행원은 옛날과 같은 선망의 직업은 아니다.
잦은 야근과 상품 판매에 치이는 기계적 일상이 현실이다. 급여도 금융권 공기업이나 증권사에 밀린다.
더 큰 문제는 수익성이다. 올해 1분기 국내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은 1.6%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작년 4분기 1.79%보다도 0.19%포인트 더 떨어졌다.
돈을 굴려도 벌이가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업계 경쟁은 치열하고, 앞으로도 사정이 나아질 기미는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돈 벌이가 되는 기업, 고액 자산가를 앞다퉈 모실 수 밖에 없다.
은행은 최근 적금 등 소위 돈 되지 않는 '서민형' 상품의 금리를 일제히 낮추며 수익성을 다져나가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고위험 상품 판매도 덩달아 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잔액은 20조원에 육박한 수준이다. 증권사를 합한 전체 ELS 판매잔액의 4분의 1에 달한다.
잦은 금융사고도 문제다. 고객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이미 소원해진 은행과 서민의 관계는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온라인 금융이 보편화하면서 점포를 직접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연말께부터는 은행 창구를 방문하지 않아도 계좌 개설이 가능해진다. 현금입출금기(ATM) 숫자도 계속해서 줄어든다. 비용이 발생한다는 게 이유다.
"은행은 맑을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아간다."
예로부터 은행권의 탐욕을 비난할 때 늘상 빼먹지 않고 쓰는 비유다.
최근 은행권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수익성만 확보하는 데 급급한 듯한 느낌이다. 심정은 안다. 하지만 수익성과 공공성을 모두 확보하는 것은 은행권의 오래된 숙제다.
은행권은 아직도 '공보(公報)'라는 말을 쓴다. 널리 알리는 일이면 '홍보(弘報)'든 공보든 매한가지겠지만 공보는 '관(官)'에 가깝다.
은행을 아직도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같은 인식 때문이다. 은행은 사기업이지만 동시에 사기업만은 아니다. 은행맨들도 여기서 긍지를 느낀다.
비대면 채널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저희가 고객을 찾아가야겠지요."
말 그대로 하길 바란다. 은행에 요구하는 기대와 요구는 해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