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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소리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6/09 15:37 수정 2015.06.09 15:37
에너지 정책의 결정 방식

▲     © 염명천 한국에너지재단 사무총장   에너지 정책에서 안타까운 점은 중요 이슈마다 의견이 찬반으로 갈려 결정 유예상태가 오래간다는 사실이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고준위 방폐장, 배출권 거래제, 재생에너지, 전력산업 구조개편 등이 그렇다. 해외자원개발에도 당위론과 실천의 간극은 크고 지속한다.
결정이 시급한 에너지 정책들이 미뤄지면 소요 재원과 혼란이 추가되며, 심지어 정책이 실기해 무산되기까지 한다.
양측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 소신을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메커니즘이 있는 것 같다.
전문가는 좁은 분야에 장기간 종사해 그 분야의 지식, 경험, 인맥 등이 축적된 사람이다.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은 성격이 비타협적이거나 고집불통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정책 결정에 대한 공식 논의에 들어가면 대부분이 ‘의심을 본분으로 하는’ 과학자의 태도가 아닌, 병사(soldier)의 태도를 보인다. 정치 분야에 만연한 진영논리가 에너지 정책 논의에도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정치인이 국가적 대의가 아닌 개인의 이해를 우선하기 때문에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린다고 말한다. 이 말은 개인의 정치적 생존환경이 대의를 고려할 만큼 호흡이 길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다. 에너지정책도 그런가.
원자력발전 문제를 예로 보자.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자력 관련 기업과 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소속 전문가는 원전에 긍정적일 것이다. 개인 의견과 무관하다.
반면, 환경단체에 속한 전문가는 대부분 반대 입장이다. “원전이 석탄발전을 대체해 친환경적이다”는 주장은 외면된다. 이것도 구성원의 개인 의견과 무관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든, 지구온난화든, 수소에너지든, 전기차든 진정한 과학자라면 두 가지 입장을 저울질해야 한다. 진실은 그 중간 영역인지도 모른다. 과학에 확신은 없다. 명색이 전문가라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교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논의 현장에서 그런 모습은 드물다.
어떤 연유로 젊은 시절 어느 곳에 취업하느냐가 원전에 관한 평생의 주장을 결정한다. 대학의 어떤 학과에 입학했느냐가 전력산업구조에 대한 입장을 결정한다. 관료들은 현재의 보직에 따라 주장이 갈린다. 아니다 싶으면 이탈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백지(白紙)로 출발했으나 경력이 쌓이면서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형성되고, 인맥도 굳어지다 결국 자신이 변한다. 전문가가 될 정도가 되면 사고도 묶인다. 확신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예외는 드물다. 어떤 깨달음이 있어도 주장을 바꾸기 어렵다. 외톨이가 될 용기가 있었다면 조직에서 성장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인간 세상이 비슷하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본래 사회주의자인데 우연히 극우 파시스트가 됐고, 가난한 신학생이었던 스탈린은 공산주의자가 됐다. 이들이 특별한 경우일까. 환경은 사람을 바꾼다.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이념이나 주장보다, 자신의 지위와 그것이 주는 작은 이익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렇게 이기적으로 진화해 왔을 것이다. 덜 이기적인 개체들은 자연과 사회에서 꾸준히 도태됐고, 현재도 도태되고 있다. 이를 부인하면 과학적 태도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 분야 정책 결정 제도는 인간의 이런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이 공공선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임을 전제하는데 이런 단편적 사고가 전문가를 집단에 속한 병사로 만들고, 정책의 대치상태가 지속하게 한다.
로마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 방식은 시사점을 준다. 투표에 참가한 추기경단의 이기심과 양심을 함께 보는 것이다. 그 특징은 투표 내용에 관한 비밀유지다. 선거인단의 외부접촉은 엄격히 금지된다. 투표용지는 그 자리에서 소각되고, 최종결과만 공표된다.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몇 표를 얻었는지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교황 선출 후에도 영원히 비밀로 묻힌다.
지금처럼 에너지정책의 근본을 결정하는 논의들이 이런저런 경로로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외부로 유출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인간의 양심은 보호받을 때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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