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공정위원장의 '황당한' 현실 인식
"(공정위) 직원이 야구장에서 기업인들에게 치킨과 맥주를 얻어 먹은 것과 같은 건이라면 가벼운 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가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최근 터진 공정위 직원 비리에 대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의 뜻밖(?)의 답변이 눈길을 끌었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수장이 직원의 비리를 야구장에서 '치맥' 얻어먹는 수준에 불과한, 가벼운 사안으로 비유했기 때문이다.
"개인적 일탈을 넘어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거나, "부처 수장으로서 대국민 사과도 필요하다" 며 목소리를 높이던 의원들은 정 위원장의 '치맥' 이야기에 어이 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비리 척결에 앞장서야 할 직원이 비리의 주범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백배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조직 수장의 현실 인식이 안이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공무원보다 더 준엄한 도덕적 기준이 요구되는 공정위 직원이 대기업과 유착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은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해당 직원은 이달 초 대기업으로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공정위 가맹거래과 재직 시절 현장조사 내용을 사전에 유출하고, 그 대가로 수억원대 쇼핑몰 입점권을 가족 명의로 제공받았다. 이번 일로 공정위를 검찰에 압수수색 당하는 망신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 위원장은 "(해당직원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과장이 아니라 사무관 신분이다" "아직 조사 중인 사안이다"는 등의 변명만 늘어놨다. 그는 의원들의 사과요구에도 "유감스럽다"는 말을 하며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사실 공정위 직원의 비위는 이번 만이 아니다. 지난해 1월 A국장은 같은 업체로부터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등 100만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선물받았다가 적발됐다. 지난 1월에는 지방사무소 B과장이 건설 담합을 무마하는 조건으로 금품을 수수했다가 입건되는 일도 있었다.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공정위 직원의 징계 20건 가운데 5건이 금품·향흥 수수 같은 청렴의무 위반이었다. 이 중 일부는 주의, 견책 같은 가장 가벼운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정 위원장 표현을 빌리면 '치맥' 정도 얻어먹었는데 재수 없게 걸린 셈이다.
불과 한 달 전 직원 비위 문제를 두고 임환수 국세청장은 같은 자리에서 "구구절절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공정위 직원은 533명이다. 반면, 국세청 직원은 2만명이 조금 넘는다. 어느 수장이 더 낫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두 수장의 인식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리더를 보면 조직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치맥 운운'하는 공정거래위원장의 모습에서 공정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가뜩이나 힘센 다른 부처나, 대기업에 휘둘리고, 솜방망이 처벌만 남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공정위가 아닌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임을 자임하는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수장부터 추상같은 도덕률로 재무장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