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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6월 8일을 기억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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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6월 8일을 기억하는 나라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6/06/07 15:42 수정 2026.06.07 15:43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6월이 오면 우리는 호국보훈의 달을 이야기한다.

6월 6일 현충일이면 국립묘지에는 묵직한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사이렌이 울리면 거리의 사람들이 잠시 멈추고 흰 국화꽃이 차가운 묘비 앞에 놓인다.

텔레비전은 엄숙한 추모 화면을 내보내고 정치인들은 나란히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그 이틀 뒤인 6월 8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1948년 6월 8일.

독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우리 어민들이 폭격으로 스러졌다.

정부 수립 이전의 일이었지만 분명 우리 국민이 희생된 사건이었다.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채 차가운 파도에 휩쓸렸다.

진상조사도 배상도 변변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묻혔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역사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오늘 내가 그 경위를 다시 나열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죽음에도 신분이 있는가. 죽음에도 격차가 있는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날의 희생자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날의 희생자. 이름이 반듯하게 새겨진 묘비 앞에 헌화가 놓이는 죽음과 바다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죽음.

같은 이 땅의 국민이었으나 역사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신분의 차이였는지 직업의 차이였는지 아니면 단지 기억될 만한 자리에 있었느냐의 차이였는지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물음 자체가 불편하다면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결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있다. 영토도, 경제도, 외교도 그 수단이어야 한다.

그것이 흔들릴 때 국가는 스스로의 이유를 잃는다.

이것은 정책을 이끄는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잠깐,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자.

우리는 독립운동도 중요하다 말하고 민주화운동도 중요하다 말한다.

사회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조용히 속삭인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 그러나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 공동체의 혜택은 달게 누리되 책임은 슬그머니 남에게 미루는 마음 그 마음이 켜켜이 쌓일 때 공동체는 서서히 텅 빈다.

그 빈자리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다시 소리 없이 잊힌다.

6월 8일의 죽음도 그렇게 잊혔다.

오늘날 국제사회도 다르지 않다.

평화와 자유 인권과 국제법이라는 빛나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국제정치는 여전히 차갑고 무거운 힘의 논리로 굴러간다.

강대국은 타국 국민의 생명을 자국민과 같은 무게로 달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뉴스에서 폭격과 민간인 희생 소식을 접한다.

처음에는 분노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무감각해졌다.

우리나라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조용하고 깊숙이 번졌기 때문이다.

그 무감각은 밖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반드시 안으로 스며든다.

조직 안의 부당함에도 내 일이 아니면 침묵하고 공동체를 위해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박수보다 부담을 먼저 느낀다.

정의보다 안정을, 원칙보다 침묵을 고르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얼마 전 지방선거가 끝났다.

숱한 공약이 쏟아졌다. 경제를 살리겠다 했고 일자리를 만들겠다 했다. 안전과 복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철학 잊힌 희생을 함께 기억하자는 낮고 진실한 목소리가 얼마나 있었는지.

선거 유세 중 안전사고가 나자 잠시 유세를 멈춘 것이 미덕으로 거론될 만큼, 우리가 정치에 기대하는 기준은 어느새 낮아져 있다. 정치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람을 잊은 정치는 오래가지 않는다.

6월 8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독도를 기억하는 일이기 전에 이름 없이 스러진 생명을 기억하는 일이다.

화려한 공적도, 기록된 훈장도 없이 바다에 가라앉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에 내 이웃이, 내 가족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후손이 서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잠시 떠올리는 일이다.

현충일 이틀 뒤, 독도 앞바다에는 아직도 이름 없는 혼들이 떠 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파도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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