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단오다. 본디 창포물에 묵은 때를 씻어내고 이웃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하던 날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창포물을 구하지 못했다. 대신 동해의 시린 바닷물 한 줌을 손바닥에 떠 올리며 해묵은 서러움을 고한다.
안용복 어른이시여. 홍순칠 대장과 이름 없이 스러져 간 독도의용수비대 청년들이시여. 그리고 1948년 독도 폭격 사건으로 그 검은 바다에 영원히 몸을 묻은 영령들이시여.
독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파도는 예전처럼 거칠게 바위를 때리고, 괭이갈매기는 하늘을 가르며, 태극기는 소금기 가득한 바람 속에서 나부낀다. 돌섬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섬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기에, 나는 오늘 밤이 두렵다.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것보다, 우리가 독도를 기억의 심연 속으로 지워버리는 것이 더 가혹한 비극이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독도를 말하던 목소리들이 하나둘 지워지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독도를 이야기하던 공간의 불은 꺼졌다. 강의실은 비어 가고, 젊은이들에게 독도는 주권의 역사라기보다는 시험지 위의 한 줄 문항으로 전락했다. 가르치지 않는 어른들의 죄가 크다.
이 나라 어딘가에, 바다를 이름으로 삼은 대학들이 있다. 배를 다루고, 항만을 세우고, 해양의 미래를 가르친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 바다의 대학들이 독도를 가르치는 일에는 얼마나 진지한가. 독도홍보관의 불이 꺼져도 부끄러워하는 이가 없고, 영토 교육의 명맥이 끊어져도 안타까워하는 지성이 드물다.
바다 없는 해양대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독도를 잃어버린 바다의 대학 또한 존재할 수 없다. 나는 묻고 또 묻는다. 영토의 외로운 섬 하나를 가르치지 못하는 대학이 과연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홍순칠 대장은 총을 쥐기 전에 국가를 먼저 생각했고, 의용수비대 청년들은 보상 대신 책임을 선택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은 동해의 외로운 돌섬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존엄이었다.
단오는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인간들이 만든 날이다. 섬은 스스로 울지 않는다. 사람이 울지 않으면 섬은 잊힌다.
영령들이시여. 부디 동해의 거친 바람이 되어 이 땅의 아이들 귓가에 서늘하게 속삭여 주시옵소서. 독도는 돌이 아니라 서슬 푸른 기억이라고. 독도는 영토의 경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책임이라고.
나 또한 내게 남은 생의 날 동안, 그 기억 하나만을 악물고 이 자리를 지키겠다. 향 연기 흩어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삼가 고한다.
ㅡ 2026년 6월 단오날 동해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