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제1야당과 15만여명의 직원을 둔 경찰 조직이 정면 충돌하면서 그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경찰 내부망에는 '돼지 눈으로 보면 세상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부처로 보인다'는 뜻인 한문 경구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이나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경찰관입니다'라고 쓰인 항의 피켓을 들고 찍은 인증샷이 500건 넘게 게재됐다. 경찰관이 3000여명 이상 동참한 것으로 추산된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의 "정권의 사냥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발언으로 촉발된 한국당과 경찰 간 이른바 '개싸움'은 지난 주말에도 쉬지 않고 확전 양상의 구도를 보였다. 그러나 26일을 기점으로 상호 대응 수위를 낮추거나 자제를 당부하는 분위기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6일 정례간담회에서 "냉정을 찾았으면 좋겠다"며 일선 경찰관들에게 직접 대응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같은 날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긴급 간담회에서 "이번 사안은 전국 치안 현장에서 밤낮으로 수고하는 일선 경찰의 명예와 직결된 사안이라 어떤 경우에도 본말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며 경찰 전체 조직이 아닌 황운하 울산경찰청장과 일부 '정치 경찰'로 타깃을 수정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내부망에 인증샷이 여전히 조금씩 올라오긴 한다"면서 "아무래도 청장님 말씀이 일선으로 전파되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나. 냉정을 찾으라고 하셨으니 일선 직원들도 수긍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면상으로는 과열 분위기가 차츰 수그러들 분위기지만 논란의 무게중심이 개를 둘러싼 설전에서 조직 간 '힘대결'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가 검경 수사권 조정 재검토를 천명한 데 이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도 사개특위 차원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단호히 대처할 뜻을 밝혔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자치경찰제로의 전면적인 전환을 추진하고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에 쏠린 국가경찰의 힘을 줄여 지방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시장과 같은 지방자치단체장의 밑에 경찰을 두고 통제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울산경찰청의 김기현 울산시장 측 관련 수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한국당의 전략은 검찰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일치한다.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항상 자치경찰제 시행을 요구해온 게 검찰이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권한을 줄이는 대신 경찰 조직의 힘도 축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경찰 수뇌부를 비롯한 일선 경찰관 대다수가 자치경찰제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자유한국당은 국민적 공감대와 균형감을 유지한 채 경찰의 오랜 숙원인 검경 수사권 문제에 대해 균형적인 입장을 가지고 접근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으름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이런 한국당에 '수사권을 구걸하지 않겠다'며 강경한 기류다. 내심 지방선거를 벼르고 있다.
전국 각지에 산재하는 15만명의 경찰관들이 6월 지방선거에서 투표로 한국당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한 경정은 "경찰 조직이 15만명에 가까운데 가족, 친인척까지 동원하면 30만표는 되지 않겠냐"며 "호남, 영남 지역에 따라 표가 특정 정당에 쏠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선거 때 한국당을 찍지 말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모 경찰관은 "경찰도 유권자"라며 "이번 한국당의 (미친개) 발언은 15만 현직과 가족, 150만 경우회와 가족, 각종 친경단체, 경찰 준비생들, 각 대학 경찰행정학과 학생 등의 표심을 흔들었다. 앞으로 상당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최초에는 '경찰'이라고 비유했다가 10만 넘는 경찰의 표와 더불어 그 가족까지 표를 생각해보니 문제가 너무 불거져 페이스북에 면피용으로 '고위직 경찰'이라고 축약했다"며 "표적을 잘못 짚었다"고 비판했다.
일선의 한 경찰관 역시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라는 조직에서 국민에게 미친개라는 표현을 썼어야 했느냐"며 "국회의원이 고작 그 정도 말 밖에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낙마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