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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만파식적 - 거짓말 같은, 그러나 현실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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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만파식적 - 거짓말 같은, 그러나 현실이 된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3/29 17:59 수정 2022.04.19 16:31

정여산 <br><자유기고가>
정여산
<자유기고가>

4월 1일은 포항제철 창립기념일이다. 포항제철은 포스코의 옛이름이다. 포항시민들에겐 종철(종합제철)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는 1968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창립되었다. 만우절에. 아무도 성공하리라 믿지 않았고 세계가 거짓말이라고 반대했다. 당시 한국에서 제철소 건설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길 기대하는 일이라고 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자페라는 사람이 세계은행(IBRD) 조사관으로 제출한 종합제철건설 차관 제공 검토 보이고서에 그렇게 씌어져 있었다. 그가 하고싶었던 말은 “언크레더블(상상하기 어렵다)”이었다. 오랜가난을 극복하겠다는 박정희 정권의 절박함, 포항제철 창업세대들의 돌관 작업 투쟁, 그리고 간절하고도 열화와 같은 포항 시민 응원 소리가 자페씨 눈과 귀에는 미처 전달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원래 금수강산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명사십리 해변이었다. 필자의 어린시절 사진은 대부분 포항 송도해수욕장 사진이다. 이 곳에서 제철소를 지으리라고 당시 지역사회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결과론적으로는 이곳에 용광로가 들어서게 된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 조선 기상학자 이성지(1691~1707)의 시, ‘죽생어룡사 가활만인지 서기 동천래 회망무사장’ (어릿불에 대나무 생겨나니 일만 사람 살리는 땅이로다. 서쪽 기물들이 동쪽으로 옮겨와 돌아보니 모래마당 없어졌네) 포항제철소 굴뚝을 대나무에 비유한 나름 설득력이 있는 예언이다. 수백 년이 지나 굴뚝이 솟아오르자 예언이 적중했다는 말이 제철소 건설 당시 지역사회에 회자되었다.

필자는 역사적 필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다. 만파식적 이야기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나타나, 바다 위에 떠오른 거북 머리 같은 섬에 대나무가 있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였다.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나무 역시 협쳐져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전하의 보배가 될 것”이라는 용의 계시였다. 피리를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졌다. 몰려왔던 적군이 물러가고 코로나19 같은 역병도 나으며 홍수가 나든 가뭄이 오든 단번에 해결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다.

어룡사 전설이 시각적이라면 만파식적은 다분히 청각적이다. 팔자의 초등학교 하교길에 육중하게 지축을 울리던 굉음의 정체를 안 것은 꽤 시간이 지나서다. 중후장대형 설비가 들어설 연악지반 개량공사 파일 항타 소리였다. 돌이켜보면 그 소리가 이 땅의 오랜 가난을 물리칠 희망의 울림, 바로 ‘만파식적’의 향연이 아니었던가.

최근 포항시 정치인들의 공약을 보면 누구나 지역사회 발전을 내세우고 있다. 그 가운데 포스코와의 협력을 최상위에 꼽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난 몇 년간 그 공약을 이향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임기 초반에 분위기 파악하고 금방 시간이 지나고 다시 선거철이 되면 포철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한 무소속 후보자가 지역사회와 포항제철을 대립구도로 몰아 당선된 사례가 있었다. 매우 안타까운 포항 정치사다. 이후 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 포항제철을 활용하면 된다는 ‘기승전철’의 인식이 정치하는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만파식적의 원리를 되새겨 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두 개의 대나무가 합쳐져야 위대한 소리가 나듯 지역사회와 기업이 화합해야 한다. 이를 갈라치기 해서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려는 폐해는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5년전 포항과 포스코는 미래를 여는 융복합 스마트도시 건설을 위한 마스트플랜을 함께 도출했다. 이를 위해 ‘미래여건 변화 대응’,‘시민의 공감과 합의’,‘새로운 도시브랜드 창출’이라는 세 가지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협업에 약속한 바 있다. 선거철만 되면 이러한 합의가 서거럭거리고 서로 삿대질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간 나온 공약들이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포항은 벌써 환동해 글로벌 중심도시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번 지자체 선거는 무엇보다 지역사회 통합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계층간, 세대간, 기업과 지역사회, 이데올로기 진영간 갈등을 용광로에 집어 넣는 한바탕 축제가 되어야 한다. 가상현실이 실제 세상을 능가하는 오늘날 물리적 공간 문제로 기업과 지역사회를 편가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메타버스로 어디에서도 회의할 수 가 있고 블록체인으로 제트기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에 본사가 어디에 있든 뭣이 중한가. 굳이 서울을 고수하는 입장이나 꾸역꾸역 지방으로 끌어 오려는 노력이 나름 이해는 되나 공감하기는 어렵다.

만파식적이야 조령 고개를 넘으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지만, 글로벌 세상에 어느 기업이 반드시 어디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다. 포항제철 창립기념일을 기해 다시 화합의 하모니가 지역사회에, 포항 경제를 살리는 아름다운 굉음이 제철소에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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