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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萬波息笛 만파식적 - 만국의 노동자여 안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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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만파식적 - 만국의 노동자여 안전하라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5/03 18:02 수정 2022.05.04 02:00

정 여 산<br><자유기고가>
정 여 산
<자유기고가>
몇 해 전 마르크스 출생 200주년이라 하길래 ‘공산당 선언’을 훑어보았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로 시작되는 이 글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마무리된다. 단결한 노동자들은 행동하고 투쟁하고 교섭하기 시작했다. 1886년 8만여명의 시카고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한 날이 5월 1일 바로 메이데이 노동절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절을 일제 탄압에 항거하는 날로 삼았으며, 군사정권에서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다. 최근 다시 노동절로 환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이영호 번역, 1996년)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일이 사라지고 새로운 노동의 출현을 예고한 바 있다. 영국의 유명한 대학은 해마다 앞으로 없어질 직업 리스트를 발표하여, 안 그래도 코로나로 매출이 줄어 괴로운 사람들을 심란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그 우선순위에 올라 있다. 기자는 사라질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데, 칼럼니스트는 아직 안 들어가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면서 새로운 노동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안전’이다. 지난 해 4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은 현대중공업은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방침으로 천명했다. 3년간 3000억원 투자 등 고강도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권오갑 회장의 진두지휘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3사 경영층이 각오를 다졌다.

‘안전 관리와 일벌백계’를 강조하는 권 회장의 메시지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 2월 5일 현대중공업에서 한 작업자가 또 목숨을 잃었다. 블록 작업용 고정 받침대 위에 있던 가로 8m, 세로 2m, 무게 2.5t의 철판 조정 작업을 하던 중 철판이 흘러내려 옆을 지나던 근로자를 덮친 것이다. 포스코도 그룹운영회의에서 안전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며 작업 중지권을 직원들에게 적극 안내하고 철저히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작업 지시를 받거나, 신체적 혹은 정서적 요인으로 인해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면 작업자들은 이에 대한 거부를 요청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시가 채 전달되기도 전인 2월 8일 포항제철소 원료 적재장에서 컨베이어벨트 교체 작업을 하던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5공 시절인 1981년에 이미 산업안전법이 제정됐다. 그 뒤로 위험작업 외주화 금지, 작업중지명령 도입, 원청업체의 책임범위 강화, 산재발생시 원청업체 처벌 등 몇 차례 법 개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주요 산재사망자 대부분이 하청 노동자들이었고, 삼성전자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하기까지는 11년이나 걸렸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발생률 1위, 자살률 1위, 저출산률 1위와 함께 ‘OECD 최악의 산업재해 발생률’이라는 오명을 여전히 씻지 못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재해사고율이 18명으로 영국의 20배에 해당하고 지난 20여 년간 산재발생률 1위 국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9년에 2020명, 2020년 상반기에만 1101명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산업안전 재해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 정부는 그간 경제성장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전에 대한 법령 마련과 감독업무에 전문성을 갖추고 충실히 임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업 경영자들은 주가 상승이나 원가 절감을 통한 단기성과 위주의 경영에 함몰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재해 사망사고로 인한 과징금이 1인당 100만 원 정도로 안전시설 설치비용보다 싸다는 서글픈 통계도 있다.

작업 현장의 안전에 대한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가령 산재 사망의 43%가 단순 추락사다. 원청업체가 공기(工期) 단축을 요구해 하청업체는 그물 안전망 설치 없이 공사부터 들어가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현장에서 안전 규정을 안 지켜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에게 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까지 묻는 게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로 경영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근로자가 한 명이라도 사망하거나 2명 이상 중상을 입는 사고가 날 경우 기업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의 처벌도 받을 수 있다. 중대재해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해도 원청업체가 책임을 지게 된다. 안전이나 보건조치 의무가 포괄적이며 모호해서 법을 준수해야할 현장의 혼란도 불가피하다. 누가 어느 정도까지 안전보장 활동을 해야 하는지는 인공지능(AI)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안전 불감증이 법안 하나 통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관련 당국은 입법 취지를 살려 안전작업에 대한 철저한 감독을 하고, 경영자는 일과성 캠페인이 아니라 작업 현장에 가족이나 자신이 일 한다는 생각으로 안전 확보에 최우선 투자를 해야 한다. ‘안전’이란 누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까.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생명이 걸려 있는 노동자에게 안전이 가장 절실하다. 가족의 생계나 승진, 자아실현도 좋지만, 절대 ‘죽지 말아야 할 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안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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