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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경북의 소리]‘동해물과 백두산’ 조국 품이 그립다..
사회

[경북의 소리]‘동해물과 백두산’ 조국 품이 그립다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7/26 14:46 수정 2015.07.26 14:46

▲   房 玘 泰 편집국장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는 한국 문화재 1,000점을 약탈(掠奪)·강탈(强奪)하고 도굴(盜掘)했다. 1910∼1950년대 경상도로 와서다. 오쿠라가 사망한 후, 1982년 그의 아들이 1,100여점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오쿠라 컬렉션 한국문화재도록’에 따르면, 5∼6세기 신라 ‘금동투각관모(金銅透刻冠帽)’, 통일신라시대 불상 ‘금동비로자나불입상(金銅毘盧遮那佛立像)’, 고려 목종 10년(1007년)에 간행한 불경 목판본 ‘일체여래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一切如來秘密全身舍利寶莢印陀羅尼經)’ 등 중요 문화재가 상당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1962년 1월 26일)선생이 있다. 훈민정음원본 등 국보 12점, 보물 10점 등 수많은 문화재를 수집했다.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華閣)을 세웠다. 고고학과 문화재의 기라성(綺羅星) 같은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1962년 사망 후 문화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쿠라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점을 보면, 1942년 경북도 안동에서 소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최초 판매가로 ‘천원을 제시’했으나,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격으로 만원을 치렀다. 당시 천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국내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 신사에서 2012년 일본 쓰시마(對馬)섬 가이진(海神) 신사에서 훔쳐온 ‘동조여래입상’을 지난 7월 17일 일본 측에 인도했다. 그러나 한국인 절도단이 ‘동조여래입상’을 훔칠 당시 인근 ‘간논지’(觀音寺)에서 함께 훔친 고려불상 ‘관세음보살좌상’의 반환 요구를 거절했다. 부석사(浮石寺)가 법원에 ‘정확한 유출 경위 확인 전까지 일본 반환을 중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 2013년 받아들여진 상태다. 우리 문화재찾기운동본부에 따르면, 20개국에 160,342점이 조국을 떠나있다. 일본에 67,708점, 미국에 44,365점, 독일에 10,940점, 중국에 9,806점 등이다.
일제는 조선의 상징적인 문화재를 훼손했다. 대표적인 경우는 숭례문(崇禮門, 국보 1호) 담장 파괴이다. 일제는 1907년 서울을 방문하는 일본 황태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며, 숭례문 주변 성곽을 헐어버리고 도로를 냈다. 1915년엔 돈의문(敦義門)을 헐었다. 1915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면서 일제는 경복궁 내 전각 4,000여 칸을 해체하여 일본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선당(資善堂) 건물을 통째로 뜯어 1918년에 오쿠라 저택에 옮겼다. 흥례문(興禮門)을 헐고, 1925년에 조선총독부를 지었다. ‘북관대첩비’ 약탈은 1905년 러·일 전쟁 때이다. 지금은 야스쿠니(靖國)신사의 외진 곳에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예외사항도 있다. 순천 선암사서 도난당한 18세기 불화(佛畵)를 미(美)경매장서 협상 통해 대가 없이 환수했다. 18세기 불화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東岳堂在仁大禪師眞影)이다. 도난당하기 이전 화기(畵記·그림이 제작된 경위 등을 적은 기록)에 따르면, ‘乾隆三年癸亥二月○日(건륭3년 계해2월○일)’이라고 적혀 있다. 제작 연대(1738년)를 알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진영으로 평가된다.
경찰에 따르면, 문화재 도난 경찰 전담수사관 창설한다고 한다. 최근 30년간 도난 문화재는 약 3만점에 달한다. 회수율은 17%에 그쳤다. 지난7월 19일 문화재청 통계를 보면 1985년부터 올해 3월 7월까지 합산하면 전체 분실 문화재는 3만 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회수된 문화재는 전체 도난품의 17%인 4천757점(209건)이다. 2013년 11월부터 올 6월 말까지 검거한 문화재 사범은 모두 45건에 356명에 그친다.
우리 문화재의 모태(母胎)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문화재도 조국(祖國)이 있다. 국적(國籍)도 대한민국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립다. 다음은 초정(草汀) 김상옥(金相沃)의 ‘十一面觀音(십일면관음) -石窟庵’(석굴암)이다. ‘으즈시 연좌(連座)우에 발돋음 하고 서서,/속눈섭 조으는 듯 동해(東海)를 굽어보고,/그 무슨 연유(緣由) 깊은 일 하마 말씀 하실까.//... 활홀한 꿈속에 쌓여 홀로 미소(微笑) 하시다.’ 우리 문화재는 하마 말씀을 하신다. ‘동해물과 백두산’의 조국이 그립다고. 그리움의 책무는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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