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대표원장
우울증을 앓던 주인공이 스스로 정신병동에 들어가서 환자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얻은 깨달음으로 환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패치 아담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패치는 “단지 의술을 행하는 사람이 의사가 아닙니다.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의사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내가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의술은 ‘살리는 의사’로서의 소명에 급급했다고 본다. 당시만 해도 백내장 수술은 안과 의사들도 ‘최대한 많이 쓰다가 하라’고 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백내장수술을 하고 난 후 오히려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소리를 왕왕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료 환경에 익숙했던 나는 안과 전공에서 문득 환자의 삶의 질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백내장과 노안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었지만, 당시 백내장 수술 후 생업에서 손을 떼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목격하면서 안과 의사로서 백내장 수술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침한 눈을 밝히기 위한 백내장 수술이 오히려 시력을 저하시켜 두꺼운 안경을 착용하게 만들고 일상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 시술이 과연 환자를 위한 길인지 의문스러웠다.
전문의가 되고 첫 근무처였던 서울의료원에서 시도한 엑시머레이저 수술은 통증이 따르긴 했지만 시력교정에서는 성공적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 명씩 라식 수술대 위에 누웠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속에서 나는 ‘좀 더 환자를 위한 수술법을 개발할 수 없을까?’에 천착(穿鑿)했다.
그러던 1998년, 처음으로 노안수술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노안수술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 수술이야 말로 인간의 노년, 그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획기적인 수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때만 해도 ‘안티에이징’의 개념이 통념화하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년이나 노인들은 관절이 아파 걸음을 못 걸어도, 노안으로 눈이 침침하고 가까운 글씨를 읽지 못해 난감해도 그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넘기기 일쑤였다.
병원 개원 초기 냉담했던 노안수술에 대한 기대와 평가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서서히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뀌었다. 이제 그 누구도 나이 탓이나 하면서 퇴행성 질환들을 참고 견디려고만 하지 않는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의식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노안수술은 그야말로 삶의 질을 고려한 안티에이징 수술이다. 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삶의 질은 현격하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인술포덕활만인(仁術布德活萬人)이라는 말이 있다. 인술로 덕을 베풀어 많은 사람을 살린다는 말인데,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 즉 인술을 베푸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환자에 대한 질환의 문제만 해결하는 생각보다는 마음을 담아 진료한다면 ‘상술’이 아닌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