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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경북의 소리]男과 女, 그 사이에 뭐가 있는가..
사회

[경북의 소리]男과 女, 그 사이에 뭐가 있는가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8/09 15:37 수정 2015.08.09 15:37

▲ 房 玘 泰 편집국장
 남(男)과 여(女) 사이에 뭐가 있는가. 고답적(高踏的)인 질문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언론매체를 보면, 있는 것은, ‘성추행과 성폭력’ 그리고‘성희롱’이다. 날짜를 가릴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남자 교사 5명이 여학생·여교사들을 성추행했다. 서울의 공립 어느 고(高)에서 가해 교사가 여학생들에게 ‘원조교제를 하자’고 발언했다. 지난해 2월 발생한 여교사 성추행 가해 교사는 ‘애인 있어’라고 반복적으로 물었다. 성추행 과정에서 피해자의 점퍼를 찢었다.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어느 고(高)에서 교장을 포함한 남자 교사 5명이 여학생·여교사들에게 상습적으로 저지른 성추행이 밝혀진 피해자만 최소 18명이다. 부산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한 특수목적고 미술교사 A(51)씨는 지난해 3월부터 지난 5월까지 여학생 5명에게 수차례 ‘몸이 예쁘니 누드모델을 하면 되겠다’고 말하는 등 성희롱했다. A씨는 또 수업시간과 전후에 여학생들에게 ‘섹시하다.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했느냐. 엉덩이를 얼마나 만지고 싶은데’라는 등의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강원도교육청은 지난 1월부터 교내에서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미성년자 강제 추행)로 경찰에 적발된 B 교감을 최근 직위 해제했다. B 교감은 지난 3월 초등학교 여학생을 생활 지도하던 중 성추행한 혐의이다. 서울 중랑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60대 박 씨는 체험활동을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제자인 A 양(11)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상습적으로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이다. 광주에서 최근 교사 연수에서 강사로 나선 전남대 국어교육과 A(60) 교수이다. A 교수는 칠판에 ‘101’과 ‘111’을 쓴 뒤, ‘0’은 여성의 음부(陰部)라고 말했다. 성추행·성폭력·성희롱의 백미(百媚)이다.
남과 여 사이에 뭐가 ‘다른가’로 고쳐, 다시 묻는다. 서로 간에 ‘끌림’이 다르다. 여성은 피부 접촉에서 리비도(LIBIDO)를 느낀다. 그러나 남성은 여성을 봄으로써 리비도를 받는다. 그러니 남성은 되도록 신체적인 접촉을 하려고 한다. 성(性) 심리적으로 여성은 자기의 몸을 노출한다. 노출의 이유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어 보다 좋은 유전자를 찾기 위함이다. 남성은 무조건으로 여성의 피부에 접촉하여, 자기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함이다.
프로이드의 리비도이론(LIBIDO THEORY)은 1890년대부터다. 처음에는 막연히 성적 욕망이나 성적 흥미이었다. 나중에 이 용어는 본능적 개념과 관련된 이론적 용어가 되었다(1905). 전 생애를 통해 지속되는 성적 흥미나 자극은 다양한 행동과 정신 활동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본능적 성적 느낌 혹은 유발된 성적 충동은 리비도를 만족시켜 주는 목표와 대상이 되었다. 이 개념은 1914년과 1915년에 프로이드는 리비도이론을 공식적으로 서술하였다. 위의 리비도이론은 남성과 여성의 끌림이 다른 것을 뜻한다고 볼 수가 있는 대목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한다.
그러나 요즘의 성추행·성폭력·성희롱과는 다른 이론이다. 아마도 석기시대(石器時代)때쯤에는 위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일부일처(一夫一妻)가 아닌, 남(男)과 여(女)가 혼숙(混宿)할 때이기 때문에 ‘男·女유전자’만 보다 퍼트리면 되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현명했다. 최초의 성문(成文)인 함무라비법전(法典)을 만들었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현대의 사법제도(司法制度)도 만들었다. 사회적인 도덕률(道德律)을 바로 세웠다. 법의 상위개념인 도덕·종교도 생겼다. 이 같은 것이 사회적인 성추행·성폭력의 안전 울타리가 되었다고 여긴다.
뭐가 있던 뭐가 다르던, 남과 여는 성(性)에서 다른 점이 존재한다. 이 같은 다른 점에서부터 ‘결혼/가족이 탄생’했다. 이때부터 다른 이성간에 성추행·성폭력이 없어야만 한다. 대법원은 흡연을 꾸짖는다고 여성 목덜미 주무르면 추행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의 판결내용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요즘의 강제추행·성폭력·성희롱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남녀(男女)의 성(性) 견해의 다름에서, 온 사회가 지켜내야만 한다. 성추행·성폭력·성희롱은 사회의 도덕률을 밑동부터 내리 썩게 한다. 썩는 사회를 그냥 둘 수는 없다. 다름의 인정(認定)으로 대화가 통한 시(詩)가 있다.
오탁번 시인의 ‘해피 버스데이’이다.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왔데이!/할머니가 말했다/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눈이 파란 아저씨가/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버스데이!/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서양 아저씨가/...해피 버스데이 투 유!/...행복한 버스가/힘차게 떠났다’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의 언어(言語)의 다름을 성(性)의 다름으로 읽는다면, 행복한 사회도 힘차게 달릴 수 없지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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