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내년 9월 28일 시행예정이다. 이 법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하여 만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말하는데,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근무자 등이 일정한 액수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맡은 직무와 관련이 있을 때는 물론,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다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주요 골자다. 부정이 생기는 원인을 애당초 뿌리 뽑자는 취지의 법안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최근 한우협회에서 “한우고기는 금품수수대상에서 제외시켜야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어 화제다. 한우고기는 주로 60%정도가 설이나 추석명절에 소비되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데, 만약 이법이 적용된다면 비교적 고가인 한우고기의 명절선물이 불가능하게 되어 전체적인 소비부진으로 이어져 한우농가는 물론 이와 유관한 농촌경제의 부진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선의가 한우고기농가에는 함정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2013년 겨울에 상영되었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최근 TV케이블 방송에서 재방영 되었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남편의 친구 부탁으로 국제선 여객기의 짐을 들어주다가 마약범으로 몰려 수감생활로 고생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이는 실제의 사건을 극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와 유사한 사례도 있었다. 어느 국제선 부두의 방금 도착한 배에서 내린 원주민 할머니가, 곁을 지나가던 우리나라 젊은 여대생에게 짐이 많아 그러니 좀 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할머니의 연령이나 행색으로 보아 혼자서는 도저히 그 짐을 옮길 수 없다 싶어 그녀는 할머니의 청을 들어주었는데, 조금 후 그녀는 밀수범으로 그 나라 세관에 체포되었다. 할머니의 짐이 밀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여행 중 옆 사람의 짐을 옮겨주는 친절은 선의지만 그 짐이 밀수품이라는 사실이 함정이 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일 사민당이 제안한 비만세(sugar tax)에 대해 독일인의 대부분은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는 뉴스가 있었다. 독일의 한 건강보험회사가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2011년에는 세계 최초로 덴마크가 뚱뚱한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는 비만세(fat tax)를 도입하여 전 세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당국은 고지방식품에 집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면 국가 세수를 늘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지방식품의 소비를 줄일 수 있어 국민의 건강도 좋아질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러나 시행 1년 만에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식습관을 바꾸지 못한 국민들은 이웃나라 상품을 집중 구매하였고, 따라서 그 나라 식품업체는 폐업으로 내몰려 실업자가 늘어나는 국가적 재앙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만세 도입은 명백한 선의였지만 그 결과는 함정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유아의 무상보육 문제에 대해 지금은 다소 신중해진 분위기이지만, 선거 때는 ‘복지분야’ 발표만큼은 여야가 서로 질수 없다는 기세로, 전부 무상으로 하여야 선거에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여기저기서 무상복지정책을 내놓다보니 전국 곳곳의 지자체 예산이 바닥나는 사태를 가져왔다. 복지 분야의 확충을 통한 국민행복 추구는 선의지만, 충분한 재원마련 대책 없는 무상복지 발표는 분명한 함정인 것이다.
선의는 좋은 의도다. 따라서 뜻이 좋기 때문에 그 결과도 좋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아무리 선의에서 한 일이라도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좋은 의도로 시작해야 하지만, 그 결과도 실제로 좋게 이루어지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김영란법’은 분명한 선의이지만, 한우농가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이 필요해 보이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