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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경북의 소리]젖지 않는 향기의‘노름마치’를..
사회

[경북의 소리]젖지 않는 향기의‘노름마치’를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8/19 16:09 수정 2015.08.19 16:09

▲    房 玘 泰 편집국장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이다.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隱語)이다. 여기에선 노름마치의 의미를 보다 확대해 학문이든 예술이든지간에 ‘일생의 노름마치’를 살펴본다.
지금은 민족해방투쟁운동의 광복절을 지난 때이다. 우선 이때를 맞아, 영화 ‘암살’의 주인공이다. 여주인공은 항일투사 남자현(南慈賢·1872∼1933)지사이다. 흔히들 ‘남성 안중근’, ‘여성 남자현’에서 ‘독립군 어머니’로 불린다. 남편은 을미의병 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3·1 운동 직후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에서 서로군정서 등 독립운동단체에 참여했다. 1926년 사이토 총독 암살(暗殺)시도를 기점으로 무장투쟁으로 전환했다.
남자현 지사는 1932년 만주사변 진상을 밝히기 위한 국제연맹의 조사단이 만주를 찾자,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血書)를 써 손가락과 함께 조사단에 보냈다.
이후 남자현 지사는 1933년 만주국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처단(處斷)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그 뒤 혹독한 고문을 견디며 17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다가 순국(殉國)했다. 정부는 1962년 남자현 지사의 항일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또 2002년에는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고 새긴 어록비를 독립기념관 경내에 세웠다.
남자현 지사를 조명(照明)하는 참에 일본의 아베총리의 혈통(血統)을 보면, 고조부(高祖父) 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 7월에 경복궁을 점령함에 따라 청?일전쟁도 유발했다. 또한 1894년 7월에 8,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입했다. 고종이 거(居)하는 경복궁을 점령한 다음 조선정부 내각을 강제로 친일내각으로 바꾸었다. 외조부 기시 전(前) 총리는 패전(敗戰) 후 A급 전범용의자였다.(장대성 고증)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정의봉(正義捧)을 든 박기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35살의 어린나이(?)인 임지훈 씨가 ‘다음카카오’ 신임 대표이사로 지난 10일 내정되었다. 임지훈 내정자는 엔에이치앤(NHN) 기획실,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를 거쳤다. 소프트뱅크 벤처스 수석 심사역을 지낸 뒤, 2012년부터 케이큐브벤처스 대표이사를 맡았다. 파격적인 이번 대표 발탁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신중하나, 일단 긍정적이다. 다음카카오 규모의 기업치고 임지훈 씨만큼 젊은 경영진은 보기 드물다. 열린 사고와 글로벌 감각을 발휘해 다음카카오의 혁신을 이끌게다. 임지훈 씨는 다음달 23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대표로 선임된다.
한국 춤의 거목 우봉(宇峰) 이매방 명인이 지난 7일 별세했다. 향년 88세이다. 이매방 명인은 생존 예술가 중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僧舞)와 제97호 살풀이춤 등 두 분야의 예능보유자이었다. 7세 때 목포 권번(券番) 장(長)의 권유로 권번에 들어갔다. 춤을 배우기 시작해 80년 넘게 전통춤 외길 인생을 걸었다. 이대조, 이창조 선생 등으로부터 승무와 북놀이, 검무(劍舞) 등 춤의 기본기를 익혔다. 5년간 중국에서 전설적인 무용가인 매난방에게서 칼춤과 등불 춤을 배웠다. 열다섯 살 때 판소리 명창 임방울의 공연에서 승무(僧舞)를 추면서 얼굴을 알렸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축하공연, 1998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초청 공연 등으로 한국 전통춤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2004년 임방울 국악상,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이매방의 승무는 호남류의 화려한 장단, 정확한 발 디딤, 현란한 장삼놀음, 힘차고 변화 많은 북 놀음이 특색이다.
‘도서출판 이론과 실천’ 김태경 대표(노무현 시대 법무부장관 강금실의 前 남편)가 지난 17일 별세했다. 1979년 서울 광화문 부근에 한국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인 ‘민중문화사’를 열었다. 1986년엔 연세대 앞 사회과학전문서점 ‘오늘의 책’을 운영했다. 같은 해 ‘이론과 실천사’를 설립했다. 광복 이후 남한에서 최초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일부 출간(出刊)했다.
마르크스를 공부한 성공회대학 김수행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에 별세했다. 박도영 한국교원대 교수에 따르면, 어느 정당 사건으로 구속된 신영복 선생과의 개인적 인연이 빌미가 되어, 고초를 겪었다. 결국 서울대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선생보다 ‘더 신념에 투철했던’ 후배나 제자들이 하나 둘씩 마르크스 경제학과 결별해 나가는 과정에서 선생은 끝까지 마르크스 경제학자의 자리를 지켰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본론’을 완역했다.
누구나 노름마치가 될 수 없다. 노름마치가 좋은 사회를 만들기가 아닌가 한다.
다음은 도종환 시인의 ‘라일락꽃’이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향기는 젖지 않는다/...그렇다. 또 신석정 시인의 꽃덤불이다.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영화 속 염석진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군들을 잡아 고문했던 악질 친일파 노덕술에게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고초를 당하게 한 이 나라다. 이 나라는 해방 후에도 이강국과 염석진과 노덕술의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1천만관객 영화 ‘암살’로 ‘향기가 젖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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