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내년도 예산(677조4000억원)안 처리 법정 기한(2일)을 또다시 넘겼다. 상습적으로 예산안을 늑장 처리해왔던 여야가, 올해에는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두고 강하게 충돌하고 있어서다.
다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한 감액 예산안의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면서, 초유의 '야당 단독 예산안' 통과 사태를 일단 피하게 됐다.
그러나 여야가 쟁점 예산의 증·감액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는 불투명하다. 아울러,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탄핵까지 맞물려 있어 연말 대치 정국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3일 국회에 따르면 민주당 주도의 '감액 예산안'은 우 의장의 제동으로 전날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우 의장은 본회의에 앞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로서는 예산안 처리가 국민께 희망을 드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신,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10일까지 예산안 처리 방침을 밝히면서 “그때까지 여야가 합의된 예산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법률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올해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은 이날까지다.
일단 우 의장의 예산안 상정 보류로 여야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으나, 예산안 처리는 정기국회 회기인 10일을 넘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감액 예산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정부 원안 677조4천억원에서 4조1천억원의 감액만 반영한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과와 감액 예산안 철회를 조건으로 내걸며 이행되지 않을 시 추가 협상은 없다는 방침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긴급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의 폭거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반면, 민주당은 특활비와 특경비 삭감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실, 검찰 등 권력기관의 쌈짓돈은 늘리고, 민생사업 예산은 24조 원이나 삭감한 특권 유지 예산안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수적 우위의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예산안 처리를 강행하면,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으로선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현주소라고 판단한다.
예산안은 법안과 달리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기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여당을 배제한 채 야당의 '단독 칼질'을 거쳐 최종 확정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민주당 출신의 우 의장으로서도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우 의장은 "다수당은 다수당으로서,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그에 걸맞은 책임과 도리를 다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여야 간 더 성숙된 논의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한다"며 원만한 합의 처리를 거듭 주문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최재해 감사원장 및 이창수 지검장 등 서울중앙지검 지휘 라인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을 밀어붙이면서 여야 간 공방도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장 탄핵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민주당은 탄핵 사유로 대통령실·관저 이전 과정 부실 감사 의혹 등을 들었다.
중앙지검장은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무혐희 처분으로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수사와 감사를 중단시키고,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한 정치 테러”로 규정하면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감사원장·검사 탄핵안이 가결된다면 정국이 한층 냉각되면서 예산안 처리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의 벼랑 끝 대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넘어 연말까지 주도권 다툼이 지속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다만, “정부와 국회에 대한 민심이 싸늘하다는 점 때문에 여야가 다양한 경로로 이견을 조율해 대치 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김상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