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는 129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서로 다른 전공 서로 다른 꿈 그들은 학점을 따러 왔고 취업 스펙을 쌓으러 왔다. 당연한 일이다. 이 시대 청춘들이 마주한 현실이 그러하니까. 나는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그날만큼은 학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교재를 덮고 창문 너머 흐린 아치섬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파도는 여전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마지막 수업에서도 나는 결국 독도를 이야기했다.
세상은 나를 오랫동안 '독도교수'라 불렀다. 내가 스스로 지어 올린 이름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불렀고 시민들이 불렀고 언론이 그렇게 기록했다. 처음엔 낯설었다. 나중엔 그 이름이 내 남은 생을 설명하는 가장 정직한 말이 되었다. 어쩌면 독도가 나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마지막 강의가 끝난 뒤 비로소 생각했다. 연구자가 주제를 고르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주제가 연구자의 삶을 고른다.
평생 국제법을 가르치며 가슴에 새긴 문장이 있다. '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신뢰도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의도 이 단순하고 엄정한 원칙에서 시작된다. 법은 굳어 있는 조문 이전에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가 함께 지켜내야 할 서약이다. 독도는 내게 그 원칙이 차가운 현실 속에서 얼마나 살아있는가를 묻는 법정(法庭)이었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국가는 자신의 약속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시민은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독도는 그 질문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문득 멈추었다.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나는 35년 동안 해왔다.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이 수천 명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공무원이 되었을 것이고 기업인이 되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독도를 기억하고 있을까.
수업이 끝나고 학점을 받고 나면 그 질문도 함께 서랍 속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아니, 더 솔직하게 묻자. 나 자신은 35년 동안 강단 밖에서 얼마나 그 질문을 살아냈는가. 강의실 안에서 열정적으로 외친 말들이 내 일상에서는 얼마나 살아 숨 쉬었는가.
그 물음 앞에서 나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최근 제2회 나라사랑·독도사랑 문화제를 준비하며 난생처음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후원을 부탁했다. 손이 떨렸다. 평생 강단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 수화기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이제 거지교수가 됐습니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한 동료가 웃으며 받아쳤다. '거지가 아니라 巨知교수입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박혔다. 지식은 홀로 많이 가질 때가 아니라 기꺼이 나눌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교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눔은 직함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일이니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어른이다.
교수가 아니어도 유명인이 아니어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음 세대와 마주하고 있다. 직장의 선배로 동네의 이웃으로 가족의 부모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전달하는가가 결국 이 사회의 품격을 만든다.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버리지 말아야 할 질문을 심어주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훗날 그들이 거대한 이해관계와 현실 앞에서 흔들릴 때 그 질문이 단 한 번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우리가 건넨 말은 죽지 않는다. 수업은 끝나도 질문은 살아남는다. 그것이 교육이 가진 가장 긴 생명력이다.
서른다섯 해 만에 강단을 내려오며 내가 얻은 마지막 결론은 영토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아무리 명백한 역사 자료와 치밀한 국제법 논리가 서가에 가득 차 있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할 사람이 없다면 역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독도를 지키는 진짜 힘은 일회성 구호나 순간의 분노에서 나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멈추지 않고 배우고 끝내 행동하는 시민에게서만 국가의 힘은 자라난다.
강의는 끝났다. 그러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학점은 졸업과 함께 끝난다. 그러나 시민의 책임은 평생 계속된다.
독도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선 섬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