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들을 대상으로 엽총을 쏴 사상케 한 70대 노인의 엽총이 경찰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총기인 것으로 드러나 관리대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3일 전남 고흥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51분께 전남 고흥군 포두면 한 폐교 인근에서 친척들과 함께 시제를 모시기 위해 제사를 준비하던 박모(72)씨가 조카 A(56)씨와 B(69)씨에게 엽총을 발사했다.
총에 맞은 A씨와 B씨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A씨는 끝내 숨졌다. B씨는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사건 직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달아났으나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고흥군 동강면 한 사거리에서 검문 검색 중이던 경찰에 체포됐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카들이 조상들의 묘를 자신들과 의논도 하지 않고 혼자 결정해 이장했냐며 따지자 화가 나 승용차에서 엽총을 꺼내 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가 사용한 엽총은 미국에서 생산돼 수입됐으며, 총기 번호가 지워지고 경찰 허가를 받지 않은채 소유하고 있던 불법 총기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총기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기총과 엽총의 허가는 각 관할 경찰서장의 권한이다. 총기 구입을 원할 경우 총포사에서 총기번호가 기재된 제조 증명서를 받아 범죄경력 조회 동의서, 건강검진 등의 서류와 함께 경찰에 제출해야 한다.
경찰은 서류를 검토한 뒤 심사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경찰은 "총기 번호를 지우면 최초 허가를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며 "일반적으로 미국 등에서 수입된 총기를 불법적으로 거래할 경우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훔치거나 불법 거래한 총기가 총번이 지워진 상태에서 시중에 유통되면서 불법 수렵이나 강력 범죄 등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말 기준으로 광주에는 2930정, 전남에는 1만711정의 총기가 등록돼 있다. 그러나 등록되지 않은 총기가 어느 정도 규모로 불법 유통되고 있는지는 사실상 경찰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 지난 2월 경기 화성과 세종시에서 엽총 살인 사건이 잇따르자 경찰이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등 총기관리 강화에 나섰지만 9개월여만에 또 다시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전남경찰청 역시 오는 11월20일부터 내년 2월29일까지 102일간 전남 보성군 수렵장이 개장하자, 총기 사고 예방을 위해 수렵총기 안전관리를 강화할 방침이지만 불법 총기 단속과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현행 허가 및 관리체제보다 더 엄격한 제도 수립으로 총기가 범죄 등에 악용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경찰은 박씨를 살인과 총포도검 화학류 등 단속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