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어렸을 적 동네 어귀에 모인 아이들은 이 말을 하면서 사라졌다 모였다 했다. 술래한테 잡힌 아이들은 다시 술래가 되어 남은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이웃집 마당 뒤켠, 화장실, 대청 마루 밑 등을 수색(?)한다. 남해 남면 시골에서 술래잡기를 즐겨하던 한 소년이 성장해서 경찰관이 된다. 바로 경남지방경찰청(청장 백승엽 치안감) 양산경찰서 하진형 정보과장이다.
하진형 경정은 남해도에서 반농반어를 하던 하창규(작고) 선생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45세가 된, 당시로서는 늘그막에 태어난 하 경정은 1986년 순경으로 경찰관 생활을 시작한다. 종교는 '부모님'이다. 2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1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슴에 모시고 항상 부모가 지켜보기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종교인 셈이다.
매일매일 반성을 하면서 쓴 일기가 벌써 30년이 되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훌쩍 지난 해인 2006년에는 '하얀 어머니'라는 책을 내면서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했다. 어머니의 어쩌면 길지 않은 투병을 여자병동에서 간호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하 경정이 얼마나 효자인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모든 게 잘 될거야'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닌 54세 중년의 그는 독서를 좋아하면서도 장거리 등산과 산악자전거 등 다소 무모한 도전을 즐기기는 '신세대'이기도 하다. 부모 덕택에 인덕이 많다고 늘 자랑하는 하 경정의 글 솜씨는 정말 일류작가 수준에 버금간다. 놀랍게도 학력은 방통대 법학과 2년을 중퇴한 게 전부인 요즘 보기 힘든 '저학력자'다. 군대 다녀와서 복학을 못하고 순경이 된 후로 바쁜 일과 속에서 복학할 시간을 놓쳐버렸다.
항상 재직한 경찰서 부하들에게 큰 덕망을 받고 있는 하 경정은 대한민국 경찰들에게 작년 경찰의날을 앞둔 10월7일 큰 선물을 했다. '꼭꼭 숨어도 머리카락은 보인다!'(불휘미디어)가 바로 그것이다.
시민이 신고한 범인을 경찰이 놓치거나 음주운전 단속 후 만취한 사람에게 자동차 열쇠를 돌려주는 것처럼 안일한 업무처리로 인해 여론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하며, 그것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경찰은 우리 시민의 지팡이이며 경찰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 범인 검거현장에서 칼에 찔렸을 때 바로 지혈하고 후송되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 그러나, 피를 흘리면서도 범인을 잡기 위해 뛰다가 순직한 경찰도 적지 않다. 직업병일까? 근무 중이 아니더라도 위험한 상황이 되면 본인의 안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범인 검거 현장에 바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경찰이다. '민경불이(民警不二)'라고 하여 국민과 경찰이 둘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그런 경찰들의 업무 속에서의 삶을 우리는 너무나 모른다. 내가, 우리가 편안할 때 느끼지 못하는 경찰들의 가슴은 어디선가 외롭고 다급한 이웃의 곁에서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 있다. 이런 현장 경찰관과 이웃들의 어울린 삶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경정은 '태풍전야에 홀로 사는 바닷가 할머니'를 구한 경찰 이야기를 비롯해서 수많은 미담을 찾아서 소개한다. 어쩌면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그의 주변에 산재한 이야기를 주워 담았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뉴스가 경찰의 일부 극단적인 안 좋은 이야기를 전할 때 하 경정은 출판기념회도 없이 조용히 우리에게 경찰이 곧 시민이며 시민을 위해서 존재했다는 수많은 사례를 잔잔하게 전해준다. 직업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잘 나게 안 하지만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찾게 되는 이들이 바로 현장 경찰관이다. 이들을 찾는 우리에게 무한한 신뢰를 선사해 준 그의 책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패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