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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손흥민, 잠든 한국축구 깨울까?..
사회

손흥민, 잠든 한국축구 깨울까?

운영자 기자 입력 2014/06/25 21:46 수정 2014.06.25 21:46
그라운드의 막내… 벨기에전 27일 폭풍 드리블 기대
▲ 알제리전에 선발 출전했던 축구국가대표팀 박주영과 손흥민이 브라질월드컵 베이스캠프인 브라질 포즈 두 이구아수의 플라멩고 스타디움에서 회복훈련을 하고 있다.     © 운영자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우리 국민에게 지난 23일 오전 4시(한국시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의 이스타지우 베이라-히우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은 충격 그 자체였다.
H조 최강 벨기에도 아닌, 그저‘첫 승 제물’로 여겨 온 알제리에 역대 월드컵 출전 사상 가장 많은 빅리거들이 포진한, 그것도 해외언론들이 H조 2위로 꼽아온 러시아와 대등한 경기 끝에 아깝게 1-1로 비기며 한껏 희망에 부풀게 했던 한국 축구대표팀이 그처럼 초토화될 줄은 결코 몰랐기 때문이다.
단잠을 마다한 채 밤을 꼬박 지새며 홍명보호의 선전을 기대했던 국민들 중 상당수는 전반전에 슈팅 한 개 날려볼 겨를도 없이 정신 없이 3골을 내준 모습에 실망, 뉴스로 경기 결과를 확인하기로 하고 늦은 잠을 청했다.
그러나 후반전이 시작되고 5분 만에 국민들은 다시 모두 일어나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한국의 아들'이 지쳐가던 민족 정기를 일깨우는 벼락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18일 브라질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치러진 러시아와의 H조 1차전(1-1 무)에서 골을 터뜨리지도, 도움을 기록하지도 못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저하지 않고 경기 최우수선수(MOM)으로 꼽은 선수. 브라질 언론이 ‘한국의 네이마르’라고 자신들의 새로운 슈퍼스타 네이마르(22·FC바르셀로나)에게 견줄 정도로 격찬한 선수.
깐깐하기로 소문난 유명 축구 칼럼니스트 존 듀어든(42)이“수비에 치중하며 그라운드를 누볐던 박지성과 달리 개인 돌파로 직접 슈팅을 만들어낸다. 이번 월드컵에서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고 더 큰 무대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선수. 바로 손흥민(22·바이어 레버쿠젠)이 마침내 꿈의 무대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사실 손흥민은 그 동안 홍명보호에서 가장 기대를 모아왔다.
좌측면 공격수로 러시아전에 선발 출전해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손흥민은 전반 10분과 39분 각각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러시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날 후반 39분 교체아웃될 때까지 손흥민은 패스 성공 27차례, 슈팅 3개를 기록하며 한껏 예열을 한 뒤, 알제리전에서 마침내 폭발시켰다. 알제리전에도 좌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0-3으로 패색이 짙던 후반 5분 미드필드 지역에서 올라온 긴 패스를 몸으로 잡은 뒤, 페인트 동작으로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손흥민은 한국 공격진이 사실상 존재감을 상실했던 전반전부터 여러 번의 드리블 돌파로 그나마 유일하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인 여세를 몰아 마침내 골을 일궈냈다. 알제리가‘경계대상 1호’로 꼽고 집중마크했지만, 이미 월드클래스급으로 성장한 손흥민을 100% 봉쇄할 수는 없었다.
막내에게 자극받은 형들도 용기를 냈다. 그 결과 후반 17분 알제리가 한 골을 추가해 다시 3골을 앞서 갔지만 한국은 기어이 후반 27분 구자철(25·마인츠)이 한 골을 넣어 더 추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알제리전은 영화나 만화가 아니었다. 한국은 현실을 극복할 수 없었고, 손흥민은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한국은 끝내 2-4로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반전에 한국의 졸전을 보며 분노했던 국민들이지만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손흥민의 모습을 보며 회초리를 잠시 내려놓은 채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이제 한국(승점 1)에 남은 16강 진출의 마지막 불씨는 오는 27일 오전 5시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지 상파울루에서 열릴 조별리그 H조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같은 시간 열리는 러시아(승점 1)와 알제리(승점 3)의 3차전에서 러시아가 꼭 이겨 한국과 러시아가 승점 4점 동률을 이룬 뒤 골득실을 따져 우리가 앞서는 것이다.
벨기에(승점 6)는 이미 2승을 거둬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다. 이제는 조별리그보다 16강전 이후를 염두에 둬야 한다. 주축 멤버들을 아끼기 위해 한국전에 백업 요원들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승리를 넘어 대승까지 기대해볼 수 있는 이유다.
이번에도 손흥민의 발 끝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명색이 '최전방 공격수'인 박주영이 지난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슈팅 하나 못하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의 블리처리포트는 아예 손흥민을 “(한국의 벨기에전에서의)유일한 희망”으로 꼽았다.
손흥민도 그런 사실을 잘 안다.
손흥민은 지난 24일 베이스캠프인 브라질 포즈 두 이구아수의 플라멩구 스타디움에서“이제 한 경기가 남았다. 그라운드에 나가서 알제리전 같은 후회가 남는 경기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면서 “팬들의 걱정을 잘 알고 있다. 이를 감수하고, 모두 이겨내는 것이 선수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앞선 두 경기에서처럼 응원해달라”는 말로 필승 각오를 다졌다.
‘그라운드의 소년가장’손흥민의 눈물이 차갑게 얼어붙은 국민들의 마음을 녹여 마지막 희망을 품고 27일 다시 새벽잠을 반납하고 대표팀을 뜨겁게 성원할 준비를 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은 그 눈물이 박주영의 깊은 잠에 빠진 축구 재능, 아니 본능까지 흔들어 깨웠기를 소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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