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존립을 위협하는 초유의 정치·사법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경찰의 전격 압수수색과 야권의 특검 요구, 전국 재선거 주장까지 이어지면서 선관위는 창설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경찰은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강남·서초·광진·동작구 선관위 등 7개 기관에 대해 동시다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됐으며, 압수수색 영장에는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을 비롯한 선관위 관계자 10여 명이 피의자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8일 만에 수사기관이 선관위 최고 책임자들을 정조준한 것이다.
정치권의 공세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원의 증거보전 대상이었던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용지 보관 상자가 폐기된 사실을 언급하며 "사태의 진상을 밝힐 핵심 증거를 선관위가 인멸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 대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며 즉각적인 특검 도입과 전국 재선거 실시를 주장했다.
그는 "국민의 분노에 정치가 답해야 한다"며 "이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신속하게 선거를 무효화하고 전국 재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김재원 최고위원 역시 "당 차원의 선거 소청 절차를 준비해야 한다"며 재선거 투쟁 가능성을 언급했다.
특히 이날 최고위에서는 그동안 정치권이 사용을 꺼려왔던 '부정선거' 표현까지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신동욱 최고위원은 "시민들이 먼저 부정선거라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며 "이 정도 부실이라면 적어도 미필적 고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 선관위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선관위는 최근 수년간 채용 비리 논란, 가족 특혜 의혹, 감사원 감사 거부 논쟁 등을 겪으며 신뢰도 하락 문제에 직면해 왔다.
여기에 국가 선거의 핵심인 투표용지 관리 실패까지 발생하면서 국민적 불신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권 내부에서는 이미 국정조사와 특검을 넘어 선관위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사원 감사 대상 포함, 외부 통제 강화, 위원 선출 방식 개편, 독립기관 지위 조정 등 고강도 개혁안이 잇따라 거론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선관위 개혁이 논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선관위 존립 방식 자체가 논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조직 개편을 넘어 사실상 해체 수준의 대수술 요구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전국 재선거 실시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재선거 또는 선거 무효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며, 단순 관리 부실만으로 곧바로 전국 단위 재선거가 성립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향후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와 법원의 판단이 선관위의 운명을 결정할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의 특검 압박, 경찰의 강제수사, 국민적 불신이 동시에 몰아치는 가운데 선관위는 창설 이후 가장 혹독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조직 쇄신으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대한민국 선거관리 체계의 근본적 재편으로 이어질지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