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의회가 내년도 의정비 인상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인상 폭의 적정성과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강원도의회가 월정수당 20% 인상을 잠정 결정하고 대구 군위군의회도 18% 인상을 추진하는 등 지방공무원 보수인상률 3.5%를 크게 웃도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앞서 포항시의회도 내년부터 월정수당을 3.5% 인상하기로 했다.
의정활동비를 포함한 의원 1인당 연간 의정비는 약 4988만원으로 늘어난다.
다만 일부 지방의회가 두 자릿수 인상을 추진하는 것과 달리 포항은 공무원 보수 인상률을 반영한 수준이다.
문제는 인상률 자체를 넘어 주민이 납득할 만한 기준과 절차가 마련돼 있느냐다.
의정비를 올리면서도 공청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주민 의견수렴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지방의회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4일 지방의회 등에 따르면 포항시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최근 2027년부터 2030년까지 4년간 적용할 포항시의원 의정비 지급기준을 결정했다.
결정안에 따르면 포항시의원 월정수당은 올해 월 256만6800원에서 내년 265만6630원으로 3.5% 인상된다. 연간 월정수당은 3187만9650원이다.
의정활동비는 월 150만원으로 동결된다. 이에 따라 내년 포항시의원 1인당 의정비는 월 415만6630원, 연간 4987만9650원으로 늘어난다.
월정수당은 의정활동에 대한 보수 성격으로 지급되며, 의정활동비는 의정자료 수집·연구와 이에 필요한 비용 보전 등을 위해 지급된다.
포항시의회는 의정비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관련 조례를 개정해 인상률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2028년부터 2030년까지 월정수당은 각 연도의 전년도 지방공무원 보수인상률을 반영해 조정하기로 했다.
이번 포항의 인상률은 지방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같은 수준이다. 전국 일부 지방의회가 두 자릿수 인상을 추진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인상 폭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지방의원 의정비는 주민 세금으로 지급되는 만큼 단순히 다른 지역과 비교해 인상 폭이 크고 작다는 점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정활동 성과와 지역 재정 여건, 주민 생활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국 지방의회에서는 의정비 인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의정비심의위원회는 내년부터 도의원 월정수당을 20% 인상하는 방안을 잠정 결정했다. 인상안이 확정되면 연간 월정수당은 기존 3991만원에서 4789만원으로 798만원 늘어난다.
강원도의회는 도의원 1명이 담당하는 관할 면적이 전국에서 가장 넓고, 지역 간 이동 부담과 의정활동 범위가 크다는 점 등을 인상 근거로 제시했다. 강원도의원 의정비가 전국 17개 광역의회 가운데 16위로 하위권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해당 인상안은 주민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세종시의회도 월정수당을 8.9%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상안이 확정되면 연간 월정수당은 기존 3801만원에서 4139만원으로 338만원 증가한다.
기초의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구에서는 군위군의회가 18%, 북구의회가 13%, 달서구의회가 12.3%, 중구의회가 7% 인상을 추진하는 등 상당수 의회가 인상안을 내놓았다. 울산지역 5개 기초의회도 최대 15%까지 월정수당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인상률은 지방공무원 보수 인상률 3.5%를 크게 웃돈다.
의정비 인상론의 핵심 근거는 낮은 보수 수준과 의정활동 부담이다. 하지만 인상 폭이 커질수록 주민에게 인상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실제 의정활동 성과로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의정비 인상 과정에서 주민 의견수렴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올해 새로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는 통합에 따른 의정활동 범위 확대 등을 이유로 의정비를 기존 6823만원에서 700만원가량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상률은 약 10.3% 수준이다.
그러나 인상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공청회와 여론조사를 생략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사회의 비판이 제기됐다.
주민 공청회를 열더라도 실질적인 의견수렴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 중구의회가 지난 8일 개최한 주민공청회에서는 발표자 3명이 모두 의정비심의위원으로 구성됐고, 반대 의견이 제시되지 않은 채 30여분 만에 행사가 끝났다. 평일 낮 시간대에 공청회가 열리면서 주민 참석도 60여명에 그쳤다.
공청회가 인상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주민의 판단을 반영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실상 인상 절차를 밟기 위한 형식적 행사에 그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시민단체들은 의정비 인상에 앞서 의원들의 의정활동 성과와 지방재정 여건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주민이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의견수렴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우식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은 "의원들의 의정 성과나 지방재정 여건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공무원 보수 인상률을 관행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은 적절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관계자도 "지금 의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시민의 눈높이를 벗어난 과욕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며 "의정비심의위원회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심의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공청회 참가자의 공정한 구성과 전 과정 중계, 공청회 이후 여론조사 등을 통한 의견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반면 지역경제 상황과 주민 여론을 고려해 의정비를 동결하거나 인상 폭을 제한하는 지방의회도 있다.
대구 수성구의회는 어려운 지역경제 상황을 고려해 내년도 의정비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2028년부터 2030년까지는 지방공무원 보수 인상률에 따라 조정하기로 했다.
이는 의정비 인상이 반드시 큰 폭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의원들의 의정활동 부담과 보수 현실화 필요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주민이 체감하는 경기 상황과 지방재정 여건 역시 외면할 수 없는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지방의원 의정비는 의정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동시에 주민 부담으로 지급되는 공적 재원이다. 합리적인 인상은 필요할 수 있지만, 인상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주민 의견수렴이 형식에 그치고 의정활동 성과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부족하다면, 의정비 인상은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의정비 인상률뿐 아니라 결정 과정의 투명성, 주민 참여의 실효성, 의정활동 성과에 대한 평가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인상 이후에는 그에 걸맞은 의정활동으로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의회가 스스로의 보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눈높이를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느냐가 지방자치에 대한 신뢰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김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