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으로서 칠곡할매글꼴을 쓸 수 있어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칠곡군에서 시작된 칠곡할매글꼴 열풍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지역민들이 앞장서 글꼴을 알리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왜관읍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혜경(39)씨는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배달하기 전에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칠곡할매글꼴로 작성한 감사의 글을 상자에 붙인다”며 “다른 글꼴보다 칠곡할매글꼴이 진심어린 마음을 전달하기 좋으며 작성하고부터는 매출액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같은 지역에서 칠곡할매글꼴로 만든 비닐 봉투로 음식을 배달하는 김인숙(54)씨는 “독특한 글씨체라 고객들이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본다”면서 “지역의 글꼴을 가짐으로 지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칠곡군에서 시작된 칠곡할매글꼴 열풍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지역민들이 앞장서 글꼴을 알리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칠곡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 400분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글꼴로 제작했다. 글꼴은 글씨체 원작자의 이름을 딴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추유을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이종희체 등 5가지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손글씨가 영원히 보전된다는 설명에 한 사람당 2000장씩 총 1만 장에 글씨를 써가며 글꼴 제작에 정성을 들였다.
폰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을 힘들게 한건 영어와 특수문자였다.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영어와 특수문자의 경우 작업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때 가족들이 할머니들의 일일강사로 나서 폰트가 완성될 수 있었다. 칠곡할머니는 코로나19라는 힘든 상황에도 또 하나 값진 문화유산을 만들어내며 문화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우뚝섰다.
칠곡할매글꼴은 칠곡군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휴대폰, 태블릿 피시 등의 모바일 환경에서도 사용 가능한 글꼴을 배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글씨체는 칠곡군 주요 거리에 설치된 현수막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지역 내에서 다양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군민들뿐만 아니라 칠곡군 공직자들도 할매글꼴 홍보에 열정을 쏟고 있으며 백선기 칠곡군수의 지갑에는 칠곡할머니 글씨체로 제작한 다섯 종류의 명함이 있다. 백 군수는 칠곡할매글꼴로 만든 명함을 건네며 글꼴 홍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칠곡군 공직자들이 내미는 명함 역시 삐뚤빼뚤한 칠곡할머니 글씨체로 제작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지역 내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퍼지고 있다. ㈜한글과컴퓨터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 칠곡할매글꼴을 정식 탑재했다. 귀신잡는 해병들도 칠곡할매글꼴에 매료됐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이 위치한 포항시 오천읍에는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입대 환영 플랜카드가 내걸렸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국립한글박물관은 최근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와 글꼴이 담긴 USB를 유물로 지정하고 영구보전하기로 했다.
# 칠곡할매글꼴 박물관과 영남 최고의 핫플레이스에 등장하다
칠곡 할머니 글꼴이 국내 최초의 한글 전용 박물관에 전시됐다. 충주시 우리한글박물관은 칠곡할머니 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또 칠곡 할머니 글꼴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제작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책자를 비치하고 별도의 기획전을 가질 예정이다.
또 최근 경주시의 핫플레이스 ‘황리단길’에 칠곡할머니의 글꼴로 제작한 가로5m, 세로10m의 대형 글판을 학교 본관 외벽에 내걸렸다. 대형 글판에는 칠곡할머니 권안자 글씨체로 “지금 너의 모습을 가장 좋아해”라는 응원 문구가 적혀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황리단길 셀카 명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 방송인 정재환 ‘홍보대사’ 나서
방송인 출신 역사학자로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어 우리말글 사랑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재환 성균관대 교수가 칠곡할매글꼴을 알리는 홍보 대사로 나섰다. 정 교수는 칠곡군과 함께 할매글꼴 홍보는 물론 다양한 행사와 강의를 통해 성인문해교육을 알리고 한글사랑운동을 펼치고 있다.
# 칠곡할매의 도전은 계속된다
칠곡군은 2008년부터 마을별로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성인 문해교육에 한글을 배우는 것은 물론 시도 쓰고 있다. 칠곡할매들을 세상에 알린 건 2008년부터 마을별로 운영 중인 칠곡군 ‘성인문예반’이다. 칠곡군은 할머니들이 지은 시 98편을 묶어 첫 시집을 내게 됐다. 이 시집이 이른바 ‘대박’이 났다. 시중 서점에 권당 정가 9000원에 내놨는데 2주일 만에 다 팔렸다. 순수한 시골 할머니들이 진솔한 시작으로 바라본 그들만의 세상에 독자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할머니들은 1권에 이어 3권까지 시집을 냈다. 시집 3권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모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2019년에는 칠곡할매시인들의 한글사랑과 애환을 소개한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 개봉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칠곡할매시인들은 시집, 영화, 글꼴에 이어 편지글을 묶어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 백선기 칠곡군수 “칠곡할매 이야기를 스토리 문화관광상품 육성 시킬 것”
백선기 칠곡군수는 “칠곡할매들은 그동안 배우고 깨친 한글로 시집과 글꼴뿐만 아니라 할머니 연극단, 빨래터 합창단, 할머니 인형극단 등 마을별로 특성을 살려 배우지 못한 설움을 떨쳐버리며 제2의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5년 성인문해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펴낸 시집 ‘시가뭐고’는 완판행진을 이어가며 7쇄까지 발간됐다”며 “2016년 할머니 시집 2권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에 이어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가 발간되는 등 세간의 화재를 모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칠곡군 평생학습의 하나인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깨친 할머니의 이야기를 스토리 문화관광상품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군수는 “지난 10년간 자치단체로는 최초로 인문학과 성인문해교육 등의 평생학습을 행정에 접목시켜왔다”며 “이를 통해 군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이웃 간, 세대 간 소통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지역사회에 확산시켜왔다”고 전했다.
이어 “평생학습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넘어 영화, 시집, 칠곡인문열차, 인문학 마을축제 등이 문화관광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칠곡군의 신성장 동력이자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하나로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인과 함께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칠곡군을 방문해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칠곡인문열차’와 칠곡 인문학 마을의 특성과 개성을 살린 주민주도형 마을 축제인 ‘인문학 마을축제’ 등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며 “칠곡만의 경쟁력과 스토리를 갖춘 인문학과 평생학습을 칠곡의 대표 문화관광상품으로 육성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명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