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뉴스 화면을 끄고,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도산서원의 그 어른이라면 오늘 이 잔칫상을 보고 무엇이라 하셨을까.
안동의 흙냄새를 아시던 분이 그 흙 위에 차려진 오늘의 상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의(義)는 어찌하시고 이(利)만 챙기시오.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다만 흔들리지 않는 음성이었다.
“내 일찍이 가르치기를 의(義)와 이(利)는 한 자리에 설 수 없다 하였소.
두 글자가 한 길을 갈 때엔 반드시 의가 앞서고 이가 뒤따라야 하느니 헌데 오늘은 어떠한가.
잔이 먼저 오가고 의는 자취가 없으니 이 어찌 도리이겠는가.
실용(實用)이라— 말 자체가 그른 것은 아니라 다만 실용에도 본말(本末)이 있어 본을 잃은 실용은 더 이상 실용이 아니라 구차함이라 하였소.
영토는 나라의 살갗이요,
역사는 나라의 핏줄이라,
통상과 공급망은 옷가지일 뿐 옷이 아무리 좋아도 살갗이 벗겨지고 핏줄이 마르면 그 옷을 누가 입을 것인가.
이(利)를 좇아 의(義)를 미루는 일이 한 번이면 실수요, 두 번이면 관행이요, 세 번이면— 그것이 곧 원칙이 되는 게라.
이번 회담에서 독도가 입에 오르지 못하였다 함은 한 번의 누락이 아니라 침묵이 원칙의 자리로 슬며시 옮겨 앉은 일이라.“
잔을 들 때에도 잊지 마시오. 선생은 평생 경(敬) 한 글자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외교의 자리에서 경(敬)이란 무엇이겠는가.
자국의 본분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마음이라 술잔이 오갈 때에도 잊지 아니하고 웃음이 흐를 때에도 잊지 아니하며 상대의 호의가 두터울수록 더욱 잊지 아니하는 것이라.
오늘의 외교에는 예(禮)는 있되 경(敬)이 보이지 않더라. 의장대를 세우고 만찬을 차림은 예의 일이라.
허나 그 자리에서 마땅히 말해야 할 바를 말함은 경의 일이라.
예만 있고 경이 없으면 외교는 한낱 잔치라.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음이 외교의 미덕이라 하나 자국의 영토와 백성의 한(恨)을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못함은 미덕이 아니라— 회피라.
말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것은 외교의 능함이 아니라 외교의 약함이라.”
말하지 않은 일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게라 선생은 잠시 말을 멈추셨다.
묵(墨) 향이 가시지 않은 손끝으로 종이 위의 한 글자를 가만히 짚으시는 듯하였다.
“말해야 할 자리에서 말하지 않음은 동의(同意)와 같다 하였네.
저쪽이 매년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데 이쪽이 한 번도 응답하지 않는다면 세월이 흐른 뒤 종이에 남는 것은 저쪽의 말이라.
이쪽의 침묵은 종이에 남지 아니하니 후세는 다만 저쪽의 글만을 보게 될 것이라.
영토의 일은 더욱 그러하니 입에 올리지 않으면 잊히고 잊히면 흐려지며 흐려지면 결국 남의 것이 되어 버리는 게라.
오늘의 외교가 ‘관계를 위하여 말하지 않는다’ 하거든 그 침묵은 누구의 편인가."
안동의 흙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안동은 단지 관광과 음식의 고장이 아니다. 나라가 기우뚱할 때마다 그 흙 위에 의(義)를 세우던 자리였다.
임진왜란에 류성룡이 있었고 그가 〈징비록(懲毖錄)〉을 적은 까닭은 단 하나 — 다시는 같은 치욕을 겪지 않기 위함이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적고 있는가.
의장대의 사진을 적고 있는가.
만찬의 메뉴를 적고 있는가.
류성룡이 붓을 꺾어 가며 적었던 그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오늘의 누군가는 적고 있는가.
식탁 위에 오르지 못한 이름 물론 안다. 중동의 불길은 우리 항구까지 닿아 있고 북핵은 머리 위에 있으며
공급망은 매일 흔들린다.
한일 협력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실용외교라는 말이 그릇된 것은 아니다.
다만, 실용이 본을 가리고 효율이 의(義)를 미루며 관계가 침묵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실용이 아니라 회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환대는 손님의 몫이요, 외교는 주인의 몫이라. 주인이 입을 다문 잔치는 잔치일 뿐, 외교가 아니다.
혹은 내가 너무 옛 어른의 눈으로 오늘을 보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그 옛 어른의 눈으로도 오늘의 어른의 눈으로도 식탁 위에 오르지 못한 한 이름은 여전히 남는다.
안동찜닭은 맛있었고, 줄불놀이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독도는 끝내 식탁 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 침묵을, 동해의 파도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