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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방랑시인 삿갓어른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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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방랑시인 삿갓어른 납시오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6/04/27 15:44 수정 2026.04.27 15:48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내가 김삿갓이다.

죽은 지 160여 년, 이승에 다시 내려와 삿갓 눌러쓰고 동해 쪽으로 발길을 돌려 보니 세상은 여전히 가관(可觀)이라.

주막에서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며 신문을 펼쳐 들었다.

도쿄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조선 사람 하나가 “독도는 우리 땅” 현수막을 걸려다 일본 순사에게 묶여 갔다 한다.

삿갓 끝을 들어 동쪽 하늘을 보니 바다 건너 일은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 모양이라.

같은 자리, 다른 시간, 같은 풍경

그 신사 앞을 거쳐 간 조선 사람이

어찌 이번 한 사람뿐이랴.

2013년 9월, 한 청년은 신사 경내에 몰래 들어가 불을 지르려다 경비원에게 잡혔다.

2015년 11월에는 다른 청년이 화장실에 폭발물을 두고 귀국했다가, 제 발로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그때 조정(朝廷)이 자국민에게 보낸 것은 “야스쿠니 신사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는 영사 문자 한 통이었다.

이 얼마나 간결한 보호(保護)인가.

자국민이 바다 건너에서 잡혀간다.

그러면 조정은 어떻게 하는가.

영사를 보내 접견하는가 변호인을 붙이는가 외교 채널을 가동하는가 아니면 “조용히 처리하자”는 밀담으로 마무리하는가.

삿갓은 답을 모른다.

다만 이번에도 별 말이 없다 하더라. 침묵은 참으로 편리하다.

기록에 남지 않으니 후세에 비판도 없다.

가정 하나 — 종로의 바람이 도쿄를 향한다면 삿갓이 막걸리를 기울이며 상상해 본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일본에서 온 관광객 하나가 “다케시마는 일본 땅” 팻말을 들고 서 있다.

그 다음이 흥미롭다.

일본 대사관은 즉시 영사 접견을 요청할 것이다. 도쿄 외무성은 “자국민 보호”를 거론하며 성명을 낼 것이다.

일본 언론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에 문제가 있다”는 사설을 쓸 것이다.

국가가 자국민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해서 따로 칭찬할 거리도 못 된다.

원래 국가란 그런 것이라.

밖에서 외치는 소리, 안에서 지우는 손 더 우스운 것은 이쪽의 안방 풍경이라.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독도지킴이학교” 운영 예산은 전국 3개교에 총 2,550만 원. 학교당 850만 원이라.

학원 여름방학 특강 한 반 운영비만도 못하다.

독도를 외치는 국민은 수천만인데 독도를 가르치는 국가 예산은 그러하다. 이 얼마나 비장(悲壯)한 코미디인가.

동네 풍경도 가관이다.

어느 지방 국립대의 오래된 독도 교육 공간도 “공간 사용료 미납”과 “형평성” 논리 앞에서 결국 운영 중단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삿갓은 이 대목에서 잠시 술잔을 내려놓았다.

행정의 논리는 본디 냉정하다.

규정이 있으면 적용해야 하고 예외를 두면 형평성이 흔들린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독도 교육이 대학의 선택 사업인가 국립대학이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책무인가.

일본은 교과서로 지우고 우리는 사용료 고지서로 지운다. 지우는 손은 국경 밖에만 있지 않다.

삿갓이 두루마기 펴고 한 마디 애국(愛國)은 광장에서 가장 크게 외쳐지되 서류함에서는 가장 작게 쓰인다.

위정자(爲政者)들이여, 세 가지를 청하노라.

하나. 공공기관의 독도 관련 교육 시설은 법령으로 보호하라.

둘. 독도 교육 거점 예산은 법정 의무 편성으로 묶어라.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흔들려선 축적이 없다.

셋. 한국민의 독도 관련 체포·조사 시 영사 조력 원칙을 공개하라.

조용히 처리는 원칙이 아니라 부재(不在)를 덮는 말이라.

삿갓 마지막 한 잔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지 120여 년,

그때의 통곡은 밖을 향했다.

오늘 통곡해야 할 대상은 밖에서 독도를 외치고 안에서 독도를 지우는 우리 자신의 모순이다.

삿갓은 누구를 미워하여 이 글을 쓰지 않았노라.

다만 서글퍼서 썼노라.

술이 깨면 다시 방랑길에 오를 것이다.

동해의 섬 하나가 부디 서류함에서 지워지지 않기를 주막 문을 나서며 두 손 모아 한 번 더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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