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직 교수(폴리텍대학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963년 수교 후 처음으로 스위스를 국빈 방문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1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스위스의 가장 큰 직업학교인 '베른 상공업직업학교(GIBB)'를 방문했다. 스위스 베른 상공업직업학교는 주 1, 2일은 학교에서 직무 관련 이론 수업을 하고 3, 4일은 기업현장에서 도제식 실습훈련을 받는 '일·학습병행제'의 롤모델이다.
스위스의 의무교육은 7세부터 시작되며 초등 과정인 프리마슐레 6년, 중등과정인 오베스투펜슐레에서 3년 의무교육기관을 마치게 된다.
스위스의 본격적인 직업 교육은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 입학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성적과 학부모 면담을 통해 직업과정과 인문과정이 결합된 과정인 세쿤다슐레(Sekundaschule), 기업체에서 인턴과정을 병행하는 과정인 레알슐레(Realschule), 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을 위한과정인 오베슐레(Oberschule) 중 하나를 밟게 된다.?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은 약 20%로 낮은 편이며 중학교 졸업자 약70% 학생이 직업교육과정을 선택한다.
스위스가 최강의 제조업과 첨단기술을 보유한 국가경쟁력 세계 1위의 강소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적인 직업교육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체계 덕분이다. 독일 역시 학교교육과 기업에서의 현장실습이 적절하게 조화된 '이원화된 직업교육훈련(Dual System)'을 제공하고 있다. 독일은 학생들이 일주일에 3, 4일은 직장에서 도제로 현장실습을 하고 1, 2일은 학교수업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선취업 후진학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직업학교는 교과수업과 도제기업에서의 직업훈련을 병행해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기술 위주의 교육이 가능하다. 기업들은 프로그램 구성에도 밀접하게 관여한다. 각 직능협회가 해당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정리한 교과내용을 학교와 도제기업에 제공하는 것은 물론 신규 및 퇴출 프로그램도 직능협회와 정부가 의논해서 결정한다. 이처럼 기업이 훈련 내용과 직종 선택에 개입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수급과 직업학교 졸업생의 균형이 이뤄진다는 것이 스위스 직업교육의 강점이다. 독일에서도 자동차 정밀기계 등 최상 품질을 만들어내는 우수 숙련인력이 독일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0.7%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며, 학력 인플레와 불황으로 고학력 청년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마이스터고 1기 졸업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낮은 연봉, 승진 차별, 대학 진학 등의 사유로 종사자 수 99명 이하인 기업에 근무하는 졸업생의 77%가 '이직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이런 부작용을 막는 데 일·학습병행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참여기업은 건실하고, 특히 훈련여건이 우수하고 CEO(최고경영자)가 인력양성에 의지가 강해야 한다. 학습근로자는 월 40만 원의 학습근로지원금과 훈련비 외에도 식비와 숙식비를 지원받고 성과 평가에 따라 정부·산업계가 인정하는 자격 또는 학위취득을 위한 비용도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해 시범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45개) 중 1차로 5개 기업이 직원을 모집한 결과 4.8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청년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일·학습병행제'는 스위스 직업학교와 독일의 도제훈련 등 선진제도를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 제도이다.
또 구직희망자가 해당 기업에 취업해 임금을 받으면서 교육훈련을 받게 돼 청년층의 조기취업이 가능하며, 스펙과 학벌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선발이나 승진이 이루어져 '능력중심 사회'로 가는데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일·학습병행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핵심 키워드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활용이다. NCS는 2002년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 기술 소양 등의 내용을 국가가 산업부문별·수준별로 체계화한 표준이며 올해 전 산업부문 833개를 완성할 계획이다.
일·학습병행제 참여기업과 훈련기관은 NCS를 활용해 트레이너 육성, 현장훈련 프로그램과 교재를 개발하고 자격검정기관은 자격종목 신설, 출제기준 개발, 검정방법을 결정할 수 있고 기업의 능력중심 인사관리(임금·승진 등)를 유도하는 기준으로도 활용된다. '일·학습병행제'는 학력 중심으로 고착화된 사회패러다임을 능력중심사회로 바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