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지켜온 마지막 주민 김신열 씨가 88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고 부고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죽음이 남긴 것은 한 사람의 빈자리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독도에는 주민등록을 둔 주민이 단 한 명도 없다.
섬은 그대로다.파도도 바람도 바위도 변하지 않았다. 경비대원들이 오늘도 그 섬을 지키고 등대는 오늘 밤도 불을 밝힐 것이다.
그러나 ‘주민’이 사라진 섬은 이전과 다른 무게를 갖는다.
그 차이는 조용하다.그래서 더 무겁다.
1965년 봄, 울릉도 출신 어부 최종덕 씨가 독도 서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국가가 보낸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해 들어가 집을 지었다.
섬에서 유일하게 민물이 나오는 물골을 찾아내고 가파른 절벽에 시멘트 계단을 놓았다.해산물을 팔아 번 돈은 다시 섬에 투자했다.
1980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자 그는 이듬해 주민등록을 독도로 옮겼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맞선 것이다.
그는 그 섬에서 살다 그 섬에서 별세했다. 1987년의 일이다.
그의 뒤를 딸 최경숙 씨와 사위가 이었다. 독도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주민등록상 최초의 독도 출생이 기록됐다.
독도는 이미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살아가는 땅이었다.
이후 김성도·김신열 씨 부부가 1991년 들어와 어업에 종사하며 섬을 지켰다. 선거철마다 독도에서 거소투표를 했고 2013년에는 독도 1호 사업자로 세금을 납부했다.
한 사람이 땅에서 밥을 짓고, 잠을 자고, 세금을 내는 일.
그 평범한 일상의 시간이 60년에 걸쳐 독도를 ‘살아있는 땅’으로 만들었다.
그 마지막 불씨가 올봄에 꺼졌다.
김신열 씨의 딸과 사위는 노모를 모시고 살겠다며 전입신고를 냈지만 반려됐다.
이후 승인 허가를 신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간결했다.
“추가 선정 계획이 없다.”
절차의 언어는 정확하다.
그러나 그 정확함이 남긴 결과를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다.
주민등록 인구 0명.
최종덕 씨가 처음 발을 들인 지 61년 만의 일이다.
같은 시기 바다 건너에서는 다른 숫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독도를 본적지로 호적에 기재한 일본인이 지난해 말 기준 112명에 달했다.
실제 거주도 법적 효력도 없는 기록이다.
그러나 그 기록은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기록은 의미를 갖고 그 의미는 언젠가 해석된다.
역사는 늘 그런 방식으로 쌓여왔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토는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이 떠난 순간 그 땅은 먼저 ‘삶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잃기 시작한다.
국제사회는 때로 법 문서보다 장면을 먼저 본다.
사람이 살아가는 섬인가, 사람이 머물지 않는 섬인가.
유엔해양법협약은 조용하지만 분명히 말한다.
사람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섬은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질 수 없다고.
독도가 그 경계 위에 서게 되는 일은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독도는 경상북도가 관할하는 땅이다.울릉군에 속하고, 그 울릉군을 품은 것이 경북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도 우리가 먼저 해야 한다.
거주 요건을 현실에 맞게 고칠 것인지,새로운 형태의 생활 거점을 만들 것인지,민간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다른 방식을 찾을 것인지.
이것은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고,동시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김신열 씨는 독도를 떠나며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독도를 잘 지키고 있어 달라.”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 그 말은 우리에게 남겨졌다.
우리는 어떤 섬으로 이어갈 것인가.
질문을 더 미루는 순간, 그 답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쓰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