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광역 지방정부 간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시·도에 연간 최대 5조원, 4년간 총 20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과 공공기관 이전, 권한 이양 등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중단 상태였던 대구·경북(TK) 행정통합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국 최초로 광역단체 통합 논의를 시작했던 대구·경북이 이번에도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아니면 호남·충청에 ‘밥상’을 내줄지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대구·경북은 2020년과 2024년 두 차례 행정통합을 추진했지만, 통합 청사 위치, 행정 권한 배분, 단계별 추진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논의가 사실상 무산됐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광주·전남, 대전·충남 등 행정통합 추진 지역에 연간 5조원씩 4년간 총 20조원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대구·경북에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에서 “통합특별시에는 서울시에 준하는 위상을 부여하고, 공공기관 이전과 산업 활성화 패키지를 적용하겠다”며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의 대전환을 국정과제 최우선 순위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다음날인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통합 논의 재개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이 도지사는 “연간 5조원 중 대부분이 포괄보조금 형태로 지원된다고 한다”며 “그동안 우리가 요구해 온 각종 특례를 더 챙긴다면 대구·경북의 판을 바꿀 실질적 대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 경북도의회, 지역 국회의원들과도 이 문제를 적극 상의하겠다”며 통합 논의 재가동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다만, 대구 정치권에서는 속도전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주호영(대구 수성갑)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행정통합은 대구·경북이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시작한 사안”이라며 “우리가 설계도를 다 그리고 초안까지 다잡았는데, 밥상은 남들이 먼저 받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주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 전에 통합하지 못하면 알짜 공기업과 국책사업은 모두 호남과 충청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통합 지연의 위기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주 의원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후보군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군을 중심으로 신중론도 제기된다. 추경호(대구·달성)·최은석(대구·동구)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 지원책의 실질성과 지속성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속도보다 내용 검증을 강조했다.
특히 경북 북부권과 경북도의회 일부에서는 여전히 행정 중심지 이전 문제와 지역 소외 우려를 이유로 반대 기류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시와 경북도는 민선 9기 대구경북통합특별시 출범을 목표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전날 대구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도, 정치권과 협의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자치단체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 권한대행은 “당초 민선 9기 출범 이후 통합 논의를 준비하려 했지만,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 아래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대구의 미래를 위한 백년대계이자, 대구경북 민·군 통합공항 건설 등 주요 현안을 돌파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김 권한대행은 기자회견에 앞서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을 만나 통합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이 의장은 “광역단체 행정통합은 대구·경북이 가장 앞서 있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인센티브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시의회는 이미 2024년 12월 ‘대구경북 행정통합 동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어, 통합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해 재차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대구시는 통합특별시 출범 일정이 촉박한 만큼, 행정통합 특별법 제정과 시·도민 공론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밝힌 행정통합 교부세·지원금 신설, 부단체장 4명 확대, 차관급 격상, 서울시에 준하는 위상 부여 등 제도적 장점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경북 북부권과 경북도의회의 반대 기류를 이철우 도지사가 어떻게 설득할지가 통합 성사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광주·전남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통합 선거가 사실상 확정 단계에 접어들었고, 대전·충남 역시 통합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김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