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부활한 기획예산처가 출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혜훈 늪’에 빠졌다는 평가가 TK 정치권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초대 장관으로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오히려 확산되자, 임명 강행이든 낙마든 모두 정권과 기획예산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경북(TK) 지역 여야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자 인선을 두고 “통합 인사라는 명분은 이해하지만, 민심의 문턱은 이미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TK 야권 인사들은 특히 기획예산처라는 조직의 성격상 장관 개인의 도덕성 논란이 곧바로 정책 추진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한 국민의힘 TK 지역 중진 의원은 “기획예산처는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때로는 정면으로 충돌해야 하는 자리”라며 “보좌진 갑질, 부동산 문제, 입시 특혜 의혹까지 겹친 상황에서 장관이 정치적 권위를 세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TK 관계자는 “임명을 강행할 경우, 향후 예산 구조조정이나 재정개혁 국면에서 ‘도덕성 공격’이 상시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정권 초반 국정 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의 목소리도 강경하다.
더불어민주당 TK 지역 한 인사는 “청문회를 거치며 해명이 해명이 아닌 변명으로 비쳤고, 특히 자녀 입시와 주거 문제는 TK 민심을 자극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며 “이 상태로 임명한다면 ‘통합’이 아니라 ‘불공정 인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획예산처는 공정과 합리를 상징해야 할 부처인데, 수장이 각종 특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낙마는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TK 관가와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에도 기획예산처가 상당 기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출범 초기 예산 편성지침과 재정전략회의, 조직 인사 등 굵직한 현안들이 장관급 판단 없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북 지역 한 관가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보면 차라리 새 수장을 빨리 세우는 게 맞지만, 지금은 임명도 낙마도 모두 후유증이 남는 상황”이라며 “출범 초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기획예산처가 수장 리스크에 발목을 잡힌 셈”이라고 말했다.
TK 정치권에서는 자연스럽게 노무현 정부 시절 옛 기획예산처와의 대비도 거론된다.
당시 기획예산처는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예산과 재정개혁을 주도하며 ‘실세 부처’로 자리 잡았다.
반면 현 기획예산처는 출범과 동시에 수장 논란에 휘말리며 정권의 재정 운용 능력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TK 정치권 한 원로는 “이 문제는 이혜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초반 인사 기준과 국정 철학을 가늠하는 시험대”라며 “대통령의 조속하고 분명한 결단이 없을 경우, TK를 포함한 중도·보수 민심 이탈은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상태 기자